"민간인들이 수없이 죽어가는 게 '이라크 자유 작전'인가."(인권단체들)"우리는 사망자 집계 같은 건 하지 않는다."(토미 프랭크스 미 중부사령관)
이라크전쟁에서 민간인들의 피해가 급증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과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전쟁이 길어질 조짐을 보이고 참혹한 시가전이 예상되는 바그다드 대회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민간인 피해는 "시작일 뿐"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오폭에 따른 민간인 피해는 예견됐던 비극이다. 전폭기가 아무리 정밀한 폭격을 시도한다 해도 민간인 희생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문제는 그 규모가 분노를 일으킬 만한 수준으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연합군은 택시 자살폭탄 공격으로 미군 4명이 사망한 이후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고 있어 연합군의 과잉대응 및 오인에 희생되는 민간인들까지 늘고 있다.
40개 이상의 세계 언론 보도를 기초로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를 집계하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www.iraqbodycount.org)에 따르면 지금까지 최소 565명, 최대 724명의 민간인이 숨졌다. 연합군 사망자의 약 10배 규모다.
1일 바그다드 남부 힐라에서도 비극은 계속됐다. 이날 오전 연합군의 공습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33명이 숨지고 310명이 부상했다.
병원을 방문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관계자들은 "수십 구의 처참한 시신들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고 전했다.
오폭에 이어 이날 밤 힐라 인근지역에서는 미군 아파치 헬기가 이라크 민간인들이 탄 트럭에 로켓을 발사, 일가족 15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야간 투시경까지 갖춘 첨단 헬기가 탱크도 아닌 민간인 트럭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오폭보다는 과잉대응 쪽에 무게가 실린다. 앞서 지난달 31일에도 나자프 인근의 검문소에서 미군이 트럭에 타고 있던 민간인들을 조준사격해 7명이 사망했다.
민간인 희생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은 냉정할 정도로 원론적이다. 전쟁 중 민간인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원칙을 앞세운 뒤 잇따르는 오폭 지적에 대해서는 "조사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잘못이 명백한 검문소 총격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한 것이 미국이 인정한 유일한 민간인 피해다.
이마저도 민간인을 가장한 공격을 일삼는 이라크측에 책임이 더 크다고 항변한다.
상황이 악화하자 국제사회도 비난 목소리를 쏟아냈다. 국제앰네스티(AI)는 1일 성명을 통해 "아무리 자국 군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을 내세우더라도 국제법은 결코 위반할 수 없다"며 "검문소 총격 사건을 독립적이고 철저하게 조사해 불법행위에 가담한 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안드레아스 마브로마티스 유엔 이라크인권감시 담당관도 "끔찍하고 비극적인 만행"이라고 비난했다.
그 동안 민간인 피해를 어쩔 수 없는 비극 정도로 치부했던 미국 언론들도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날 사설에서 "전세계 수십억 명이 부녀자와 어린이들이 탄 차량에 미군이 총격을 가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봤다"며 "이런 일이 일상화될 때 미국은 군사적 전쟁을 승리하더라도 정치적 전쟁은 패배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비록 사고일지라도 이라크 내에서는 물론 이라크 밖에서도 큰 정치적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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