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호주에 도착했을 때의 첫 느낌은 깨끗함과 조용함이었다. 항상 복잡하고 바쁜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면 누구나 유난히 푸르고 높은 호주의 하늘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사는 퀸즈랜드주 골드코스트 역시 아름답고 흰 모래 사장과 일년 내내 젊은 서퍼들이 끊이지 않은 더운 날씨로 호주가 축복 받은 나라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곳이다.호주 사람들은 절약정신이 투철하다. 헌 것, 유행이 지난 물건이라도 함부로 버리고 다시 새 것으로 사는 일이 없다. 가구, 차, 옷 등을 비롯해서 모든 종류의 중고품을 재활용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나도 한국에서는 거의 한 달에 한번 꼴로 새 옷을 장만했지만 이곳에서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유행이 지난 옷들도 스스럼없이 잘 입고 다닌다. 어떻게 움직이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인 몇 십년 된 차들도 고급 신형 차들과 함께 기죽지 않고 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영어가 거의 안되던 호주 생활 초기의 일이다. '개러지 세일(Garage Sale)'이라는 사인을 거리에서 보고 집집마다 적어도 차고가 한 개 이상 있는데 차고를 세일한다는 것이 의아해 호주 친구에게 물었다. 그 친구는 막 웃으며 개러지 세일이란 차고를 파는 게 아니라 이사나 집 정리 때 나오는 필요없는 물건들을 깨끗하게 손질해서 자기 집 차고에서 싸게 파는 거라고 일러 주었다.
호기심에 동네 개러지 세일에 가 보았더니 작게는 오래된 티스푼, 찻잔에서부터 큰 가구들, 헌 옷들과 전자제품 등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꽤 오래되고 낡아서 모양새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파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물건들을 필요한 사람들이 헐값에 살 수 있는 기회가 되니 서로 좋은 일이었다. 여기서 만난 호주 사람들은 개러지 세일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걸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일로 여긴다. 새 것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 여기고 금방 새 물건으로 바꾸는 우리나라 풍토와는 대조적이다.
1990년대 후반 한국에 방문했을 때였다. 마침 큰 언니가 새 빌라로 이사를 가 놀러 갔는데 복도에 새 신발장과 장식장이 나와 있었다. 언니 말로는 입주자가 시공사에서 한 인테리어가 맘에 안 든다고 새로 고치고 버린 것이라고 했다.
당시는 IMF 경제 위기 직후로 나라 전체가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던 시절이었기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 호주로 가져 갈수만 있다면 이고 지고라도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오래돼 색이 바랬어도 다시 색칠하고 다듬어 소중히 이용하다 대를 물려주면 될 텐데…. 하지만 그것들은 그럴 필요도 없는 새 것 아닌가. 처음에는 낯설었던 호주 사람들의 검약한 습관이 어느덧 내게도 배어든 모양이었다.
윤 미 경 호주 쉐라톤 미라지 골드코스트호텔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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