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간의 짧은 재임기간 내내 '낙하산 인사' 비난을 받은 서동구 KBS사장 사퇴 파문의 발단은 2월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박권상 전 사장의 조기 퇴임이 예상되면서 2월 내내 KBS 안팎에서는 신임 사장 하마평이 무성했다.2월 말 노 대통령이 KBS 사장 감으로 의중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뜻을 밝히면서 서동구 사장 내정설이 급부상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하마평에 일절 오르지 않았다. 해직 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20여년간 언론 현장에서 떠나 있었던 데다 방송 경험이 전무해 방송계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다각적 검증작업에 들어간 KBS 노조는 지난달 6일 성명을 통해 "정당 대선 후보의 언론 고문 출신은 사장 자격이 없다"고 못박았다. 이후 박권상 전 사장이 지난달 10일 전격 사임하고 KBS 이사회가 22일 최종 사장 후보를 결정할 때까지만 해도 '서동구 카드는 이미 물 건너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KBS 노조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전국민중연대 소속 350여 단체와 손잡고 사장추천위원회 구성을 공식 촉구하면서 청와대를 압박했고, 그 동안 사장 인선에서 '거수기' 역할에 그쳤던 KBS 이사회도 이를 일부 수용해 '개방형 국민추천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노조와 시민단체, 학계 인사로 구성된 사장추천위는 지난달 19일 이형모 전 KBS 부사장, 성유보 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정연주 한겨레신문 논설주간을 KBS 사장 후보로 정하고 추천서를 이사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3일 뒤 이사회가 서씨를 신임 사장으로 임명 제청, 논란이 불거졌다. KBS 노조는 즉각 성명을 내고 "노 후보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씨의 고종사촌으로 정실인사 의구심이 있고, 1978년 '언론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 연루자로 전력에도 문제가 있다"고 비난 수위를 높였다. 특히 '공정하고 객관적인 검증절차를 거친 인선'이라는 이사회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KBS 노조위원장이 지명관 이사장의 말 등을 들어 '정치권의 외압 의혹'을 제기하며 논란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청와대는 이런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달 25일 "이사회가 국민추천 등의 절차를 거쳐 제청해 그대로 임명한다"며 서 사장을 임명했다. 서 사장도 청원경찰을 동원해 노조의 출근 저지투쟁을 따돌리고 출근하는 등 물러날 기미가 아니었다. 그는 1일까지만 해도 지명관 KBS 이사장을 만나는 등 사장직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그러나 서 사장이 1일 지명관 이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노 대통령이 방송쪽을 맡아달라고 했다"고 밝힌 것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외압 의혹이 확산됐고 2일 오전 그는 마침내 사의를 표명했다. 임명 8일 만의 낙마였다.
/김영화기자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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