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팎이 모두 전장(戰場)이다. 나라 안에도 총성 없는 전선이 형성되어 참전 대 반전의 대립구도가 거의 전쟁 수준이다. 속전속결로 파병을 결정하고 파병동의안을 통과시켜 혈맹의 우의를 과시하려 했던 정부와 국회는 상황판단을 잘못해 예측불허의 장기전을 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파병찬반으로 맞선 시민사회단체의 낙선운동이라는 선전포고로 국회의원마저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으로 내몰린 형국이다. 연기에 연기를 거듭한 국회의 파병동의안 처리는 2일 대통령 국정연설을 듣고 투표로 결판낼 예정이지만 이 또한 불투명하다.정치외교에 비전문가인 나는 대통령의 파병결정이 전략적 선택이고 그 선택이 예상대로 미국의 환심을 살 미끼가 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파병을 통해 미국의 혈맹임을 과시함으로써 한반도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말발을 세울 수 있을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국익의 실체가 무엇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도 없다. 파병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그렇게 하지 않아 받을 손해를 교량(較量)하는 소위 전략적 선택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조차 상반된 평가를 내리는 판이라 비전문가인 나로서는 더 혼란스러울 뿐이다.
다만 대통령이 국익을 위한 전략적 선택을 고뇌하고 결단했을 때, 과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취임선서를 한번이나 떠올렸는지 묻고 싶다. 미국의 이라크전쟁에 비전투병력 파병으로 가담하는 것이 국민 앞에서 굳게 다짐한 헌법준수의무(헌법 제69조)를 위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 그 헌법에는 국제평화의 유지와 침략전쟁의 부인이라는 평화주의(제5조 1항)가 명문화되어 있음을 법률가인 대통령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라크전쟁이 침략적 전쟁인지, 미국이 외부로부터 무력침공의 위협을 받는 상황인지, 예방전쟁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 할 수 있다. 그래서 파병이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는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고 한미상호방위조약(제2조)에 따른 동맹의무의 충실한 이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분명한 것은 무기사찰에도 불구하고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고, 이라크가 테러지원국인지도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개전 후 무수히 많은 무고한 이라크 국민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해 승인되거나 외부공격에 대한 자기 방어를 위한 경우에만 무력사용을 허용하는 국제법규에 따르면 미국의 이라크공격은 침략전쟁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제사회의 여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국제사회에서 승인되어 지난 2월에 출범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초대 재판관으로 한국인이 선출된 기쁨을 누릴 겨를도 없이 국제형사재판소에 침략전쟁의 방조범으로 첫 제소되는 불명예를 당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라면 국제사회와 국민의 반전과 파병반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 생각도 없이 미국의 무언의 압력에 굴복한 듯한 대통령의 결단은 성급했거나 경솔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물은 이미 반쯤 엎질러졌다. 정부가 서둘러 국익과 전략적 선택이라는 포장으로 파병을 결정하고 대내외에 선포했기 때문에 미영연합군은 파병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을 테고, 아랍 국가들은 한국을 전쟁범죄의 공범으로 여길지 모른다. 파병이냐 반전이냐의 어느 한쪽만을 택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지금 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은 중간선이다. 공병이든 수용소 관리병이든 어떤 형태의 추가파병 요청을 단호히 거부하고 의료지원부대 파병이라는 절충안을 택하는 것이다. 미군이든 이라크 민간인이든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일은 인도적 차원에서 양해될 수 있고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에서 천명하고 있는 평화주의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한미간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적 선택이다.
하 태 훈 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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