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글도 많지만,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같은 글이 있을까.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사살 후 사형선고를 받고, 항소하지 않는 조건으로 집필시간을 얻어 이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일주일 만에 사형을 당했다. 이 미완성 유고는 어둠 속에 묻혀 있다가 70여년 만에 발견되고, 최근 법원장 면담록이나 문답기록 등이 발견되어 전체 구상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은 단순한 민족주의론이나 타국의 독립을 무시하는 일본적 아시아주의론을 넘어, 각국의 독립과 주체적 참여를 전제로 한 국제평화주의의 틀을 세운 것이다.안중근의 국제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는 동북아 각국의 개별적 노력과는 별도로 동북아 공동의 국제적 접근을 중시하고, 공동개발은행, 공동화폐발행,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강조한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공동안보체제 혹은 국제평화군의 유지와 연결시키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현 정부의 동북아 프로젝트가 과연 이 정도 만큼이나 동북아 다자주의적인지 의문이다.
안 의사가 뤼순(旅順)을 중립화하여 동북아 평화의 거점으로 삼자고 한 것은, 유럽의 철과 석탄의 산지 루르· 자르 지역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루르· 자르 지역에 대한 장악 경쟁이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으나, 2차 대전 후 유럽철강석탄동맹으로 공동관리한 결과 유럽경제공동체(EEC)로, 유럽연합(EU)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20세기 초 뤼순은 러시아의 해양 진출기지이면서, 일본의 대륙침략의 거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역시 구 만주지역 전체의 향방과도 맞물린 뤼순 반도의 소유권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동북아 분쟁의 도화선이었다. 이 지역을 중립화하고 공동관리함으로써 동북아의 평화와 연대의 길을 열자는 게 안 의사의 주장이었다.
지금 이러한 뤼순에 해당하는 지역이 한반도인 셈이고, 한반도가 동북아 평화와 균형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현 정부의 동북아 프로젝트가 이 정도로 동북아 각국의 공동참여를 촉구하는 '공진(共進)'프로젝트일까.
안 의사가 일찍이 주창한 동북아개발은행 구상도 매우 주목된다. 북한 개발은 동북아 전체의 개발구상과 연계하는 것이 좋고, 그 경우 동북아개발은행을 통해 각국 정부자금과 함께 세계의 유휴자본을 끌어들여 시베리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사업과 같은 개발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개발수요자금을 국제은행 등에서 지속적으로 조달할 수 없는 일이고, 정부 역시 특정 재벌그룹을 통한 방식 같은 것은 더 이상 쓸 수 없으며, 미국정부 또한 직접지원 방식보다 개발은행을 통한 방식을 선호할 것이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 아닐까?
안 의사의 공동화폐 구상 역시 획기적이다.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블록화 시도나 위안 블록화 구상을 넘어 제3의 통화, '아시아 유로'를 만들자는 공론이 형성되고 있다. 우리는 중일 패권경쟁을 뛰어넘어 한국이 그 공론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최근 한국은 소외된 채 아시아 펀드시장 개설과 유럽연합의 유럽통화단위(ECU)와 같은 아시아통화단위(ACU)설립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필자가 얼마 전 북측에 동북아판 마샬플랜의 필요성을 제기하자 마샬이란 이름이 싫다 하여 '안중근 플랜'이면 좋겠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본적이 있다.
포스트 이라크전쟁 프로젝트 혹은 북핵의 대안 프로젝트로, 먼저 동북아 개발은행 설립과 함께 동북아판 에너지, 정보기술(IT), 환경 그리고 물류의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그것을 동아시아 공동통화와 동북아 군축 및 비핵지대화 구상과 연계하는 동북아 공동 안중근 플랜을 구상해 볼 수는 없을까.
불가에 문자반야(文字般若·만물의 실상을 깨닫는 지혜)란 말이 있으나, 안 의사의 글은 문자천고(文字天鼓· 글이 천둥소리라는 뜻)라 할만하다. 그러나 이 글은 영원한 미완성이며, 후인들이 두고두고 완성해야 할 영원한 숙제이다.
김 영 호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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