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허용될 수 있는 폭력은 어느 수준까지일까. '돌이킬 수 없는'(감독 가스파 노에)은 관객의 팔을 붙잡고 지옥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영화다. 살인과 강간을 담은 충격적인 장면은 감히 어느 누구에게도 권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다. '폭력의 피카소' 샘 페킨파, '헤모글로빈의 시인' 쿠엔틴 타란티노도 이 영화 앞에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정도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5월23일 자정 칸 드뷔시 극장에서 열린 공식 시사회에선 도중에 250여명이 퇴장하고 심사위원이 실신하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영화는 시작하면서부터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귀를 찢을듯한 굉음은 줄어들지 않고, 카메라는 속이 뒤집힐 정도로 빙빙 돈다. 돌로 긁어낸 듯한 거친 입자의 영상 속에선 살벌한 풍경이 벌어진다.
가스파 노에 감독은 피가 낭자한 폭력의 현장을 먼저 보여준 뒤 사건 현장을 찾아가고, 그 다음 사건 전의 평화로운 한때에서 영화를 멈춘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역순의 시간 구성을 택하고 가장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사소한 에피소드를 과감하게 자르고 몇 개의 장면만으로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하다. 각본과 촬영 편집까지 맡은 감독 가스파 노에는 영상의 입자, 빛의 명암, 소리의 크기 등을 조절하며 폭력의 극한에서 평화의 극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여자친구가 강간을 당하자 반쯤 미칠 지경이 된 남자가 범인을 잡아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 전부다. 클럽 렉텀 앞에서 경찰 사이렌이 울리고 한 남자는 앰뷸런스로, 한 남자는 경찰서로 끌려간다. 마르쿠스(뱅상 카셀)는 여자친구 알렉스(모니카 벨루치)가 강간과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은 모습을 본 뒤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친구 피에르(알베르 듀 퐁텔)와 함께 강간범 테니아(조 프레스티아)를 찾아 헤맨다.
실제 상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복수 장면은 너무나 섬뜩하다. 카메라는 너무도 생생하게, 그리고 구토가 날 정도로 집요하게 숨이 끊어질 때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소화기로 얼굴을 으깨기 시작, 얼굴의 광대뼈가 무너지고, 코가 뭉개지고, 눈알이 튀어나오는 과정을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하듯 보여주는 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잔혹한 장면으로 꼽힐 만하다. 장장 9분 동안이나 카메라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지하도 콘크리트 위에서의 강간 장면을 찍은 장면도 마찬가지.
슬로 모션으로 잡은 마지막 장면의 평화로움은 폭력 장면과 대비돼 관객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는 잔디밭에 베토벤 교향곡 7번의 2악장 선율이 흐른다.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며 물을 뿌리고 점점이 흩어진 사람들과 알렉스가 휴식을 취하는 그 평화의 순간은 어떻게 산산이 깨져나간 것일까. 감독은 그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 폭력의 악취 가득한 잔혹 취향이 확대돼 보일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개성 있는 스타일에 담은 폭력 반대 메시지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4일 개봉. 18세 관람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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