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잔'이 좋아? '경아'가 좋아?" (영화 '품행제로') 김승진의 '스잔'과 박혜성의 '경아'는 80년대 중반 여중·고생에게 취향과 성격을 가르는 기준이 될 정도의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변해 버린 모습으로 첫사랑 앞에 나타나기 싫은 것처럼 대중 앞에 다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이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86년 나란히 데뷔해 91년 마지막 앨범을 내고 대중 앞에서 사라진 이들은 어떻게, 얼마나 변해 있을까.
박혜성
한 손에는 노트북 가방, CF에서 툭 튀어 나온 듯 말끔한 정장차림으로 나타난 박혜성(35)의 직업은 음악 프로듀서. "노래를 그만 두면서 팬들에게 약속했었죠. '계속음악을 할 것'이라구요."
그의 이름은 잊혀졌지만 그는 약속을 지켰다. 누비라, 라노스, 매그너스, 무쏘 등 자동차 광고, 현대 증권, 쵸코바 자유시간….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을 패러디한 하이마트 광고 음악도 박혜성의 히트작. 가수 이지훈의 1집 프로듀서였고,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의 음악 그리고 최근의 SBS 드라마 '야인시대'가 그의 작품이다.
고3이던 86년 1집 음반을 발표했던 박혜성. "중·고등학교시절 그룹사운드를 하면서 인기가 좋았어요. 단식투쟁 끝에 부모님을 설득해 가수 활동을 했고 정말 즐겼습니다. 하지만 4집을 내고는 미련을 털어버렸죠."
서른, 마흔이 되어도 계속 노래하고 싶은 건 모든 가수의 소망이지만 그게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한 가수가 나이가 들면 들어 줄 대중이 없어요. 팬들도 서른 넘어 가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 관심사는 재테크로 넘어가잖아요."
하지만 가수 꿈을 다 버린 것은 아니다. 그 동안 꽁꽁 숨어 있던 이유도 언젠가는 깜짝 놀랄 노래로 다시 나타나려 했기 때문. "지금은 사실 '변신'이라는 말이 안어울립니다. 그냥 늘 하던 대로 음악하고 있는 거죠." 얼마 전 김승진의 새 앨범을 구해 들어봤다. "그다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라이벌로 그려지던 관계였잖아요. 노래 참 좋더라구요. 잘 되어야 저도 용기를 가질 수 있죠."
김승진
그룹 '미카엘밴드'로돌아온 김승진(34). 외모도 음악도 솜털 보송보송한 얼굴로 '스잔' '줄리엣' '유리창에 그린 안녕' 등을 가는 미성으로 부르던 시절과는 180도 달라졌다. 타이틀곡 'All For You'를 비롯한 수록곡 전체에서 세상을 알아버린 듯 한 성숙한 목소리가 배어 나온다. 미카엘밴드는 김승진을 주축으로 객원가수를 초대하는 방식으로 활동할 예정.
"86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데뷔했죠. 원하는 노래를 할 수 있는 데다 인기까지 얻었으니 정말 신나게 활동했었죠. 음반도 5장을 냈으니. 그러다 갑자기 인기가 시들해지고 사회에 내던져진 후 '내가 참 세상을 몰랐구나' 싶더라구요" 그 동안 김승진에게는 많은 시련이 있었다. "6년 전에 집을 나왔어요. 혼자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부모님께 또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죠. 사업을 벌였다가 사기꾼한테 속아 엄청난 빚을 지기도 했고 배신감 때문에 한 때는 술로 하루 하루를 버텨갈 정도였습니다."
그를 버티게 한 것은 다시 노래하겠다는 희망이었다. 미카엘밴드 앨범이 나오기까지 5년이 걸렸다. "96년 일본에서 작업하다가 IMF가 터지면서 무산된 후 '내가 다시 음악을 할 수 있을까' 불안했었죠. 그래서 마음을 다지기 위해 돈 생기면 한 곡 녹음하고 좀 더 모이면 또 한 곡 녹음해서 만든 게 이번 앨범이에요. 오랜 시련의 시간이 그대로 묻어나 있죠."
지난 날의 불행을 애써 숨기려 하지는 않는다. "제가 딱 '인간극장'이나 '이것이 인생이다' 소재라니까요.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모든 시련은 제가 다시 노래하도록 하는 힘이 됐습니다."
/글= 최지향기자 misty@hk.co.kr
사진= 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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