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낮 바그다드 북서부 알 나세르 재래 시장. 침울한 표정의 이라크인들이 매캐한 연기와 먼지 속에 분주하게 나무 관을 옮기고 있다. 검은 차도르를 쓴 여성들은 거리에 늘어서서 "신이여!"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관을 옮기던 아야드 아바디는 "도대체 우리가 무슨 죄가 있느냐. 이 처참한 장면을 보면 세계가 통곡할 것이다"라고 절규했다.이 시장 일대에서는 전날 저녁 6시께 미군의 폭격으로 무고한 민간인 58명이 희생됐다. 20일 개전 이래 단일 오폭으로는 최대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다. 희생자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였다. 특히 이 곳은 미국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 반대해 민중 봉기를 일으킬 것이라고 선전해온 이슬람 시아파 노동자들의 주거지였다.
당시 시장은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갑자기 하늘에서 "우웅∼"하는 비행기 소리와 함께 폭탄이 떨어졌고, 순간 소나기처럼 쏟아진 면도날 같은 파편들이 건물 유리창을 깨뜨리고 주민들의 살점을 파고 들었다. 파편이 박힌 아이와 여성들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다 쓰러졌다. 피로 물든 거리는 부모 형제 자녀들을 찾는 절규로 생지옥이 됐다.
워싱턴 포스트의 앤서니 새디드 기자는 "시장 건물 입구에서 피 묻은 신발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고 전했다. 한 주민은 눈물 어린 목소리로 새디드 기자에게 "하산 자브르(33)의 머리가 길가에 나뒹굴었다"고 증언했다. 다른 주민은 "사이드 무사위(56)의 잘려진 다리가 피 범벅이 된 채 시신과 떨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똑바로 봐라. 여기는 시장이다. 당신들은 숨진 아이들과 여자들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서방 기자에게 소리쳤다.
이날 누르 병원에서는 여기저기 주저 앉아 있는 희생자 가족들의 오열이 끊이지 않았다. 하기 라주키 병원장은 "부상자 상당수가 아이들로 상태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딸, 손녀와 함께 TV 안테나를 사러 나왔다가 중상을 입은 사만 카드힘(52)은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미국은 학살자"라고 고함쳤다. 밤샘 치료로 탈진한 의사 아메드 수피안은 "병원 마루가 피로 뒤덮였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여기 왔다고? 이게 자유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슬람 사원에서는 통곡이 그치지 않았다. 사원 내 한 방에서는 여성들이 폭탄 파편으로 등이 뚫린 9살 소녀의 시신을 솜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소녀 어머니가 관 속에 누워 있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패트릭 그래햄 기자는 "파편으로 곳곳에 구멍이 난 시신을 입관하는 것을 봤다"며 "시장에 떨어진 폭탄은 건물파괴용이 아닌 살상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26일 오전 11시30분 바그다드 북부 상가 지역 알 샤브에서도 미사일 2발이 떨어졌다. 이 때문에 민간인 35명이 사망하고 50여 명이 부상했다고 반전평화단체인 이라크국제평화팀(IPT)이 보고했다. 미사일이 떨어진 자리에는 깊이 1m, 지름 4m짜리 웅덩이가 패였고, 상점 수십 곳이 불탔다. AP 통신은 개전 후 지금까지 연합군 폭격으로 이라크 민간인 425명이 숨지고, 4,000여 명이 부상했다고 30일 보도했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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