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떨고 있니?" 1990년대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의 그 유명한 대사이다. 요즈음 국회의원회관 곳곳에서 이 대사가 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 반전운동이 거세지면서 민주노총과 같은 민중단체, 나아가 시민단체들이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전 파병동의안에 찬성하는 의원들에 대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압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 결과 쉽게 통과될 것 같던 동의안의 처리가 두 차례나 연기되었다.사태가 이처럼 발전하자,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낙선운동과 같은) 거부나 반대운동은 비도덕적인 행위에 한정해야" "(파병안 동의여부는) 의원들의 정책적인 견해를 표명하는 것인데, 어떻게 낙선운동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며 낙선운동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자 일부 시민단체들 역시 낙선운동은 비리인사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며 동조의사를 표시했다. 또한 파병반대 의원들은 그들대로, 국익을 생각해 파병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노 대통령의 파병국익론에 맞서 '파병반대 역시 단순히 평화를 중시하는 이상론을 넘어서 국익을 고려한 또 다른 국익론'이라며, 두 입장 모두 국익을 생각하는 것인 만큼 낙선운동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낙선운동의 돌풍이 불었던 2000년 총선을 생각하면 그럴듯한 주장들이다. 당시 낙선운동의 중심이 됐던 것은 비리와 헌법파괴 행위였지 정책적 문제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왜곡되고 낙후한 한국적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다. 정책적 견해는 낙선운동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견해 자체가 오히려 잘못된 것이다.
낙선운동의 원조인 미국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의 낙선운동은 비리전과자나 헌법파괴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이들은 원천적으로 출마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으로 비리전과자들, 심지어 5·18학살 관계자들까지도 피선거권을 회복하고 정치적으로 재기해 왔기 때문에 비리와 부도덕성 문제가 낙선운동의 중심이 됐던 것이다. 사실 당시의 낙선대상자 중 대다수는 사면권 남용이 없었다면 낙선운동이 불필요하고 원천적으로 출마가 불가능했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낙선운동의 대상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정확히 정책적 견해이다. 예를 들어, 환경단체들은 의원들의 활동을 분석해 반환경적인 의원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낙선운동을 전개한다. 물론 환경이냐 개발이냐는, 비리문제처럼 옳고 그름이 명백하게 갈라지지 않는 정책적 견해의 문제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낙선운동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사실 헌법파괴 행위인 박정희의 5·16쿠데타와 유신, 전두환의 5·18학살도 안보와 경제발전이 민주주의보다 중요하다는 자기들 딴에는 국익에 기초한 전략적 판단이었을 것이고, 지금의 노 대통령이 의원 시절 거부했던 김영삼 전대통령의 3당통합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같은 판단들에 저항하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이에 대해 헌법파괴 행위와 이번 파병처럼 그렇지 않은 전략적 판단은 다르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파병은 침략전쟁을 금지한 헌법을 위반한 위헌이므로 위헌소송을 내겠다는 것이 노 대통령이 신임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회의 견해이다.
결론적으로, 정책적 견해라는 것은 면죄부가 될 수 없고 오히려 논쟁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이점에서 나 개인적으로는 파병반대운동을 하고 있지만, 보수적 단체들이 자신들도 파병반대의원의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맞불을 놓고 나선 것은 잘된 일이다. 비리문제는 낙선운동이 아니라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해 해결하면 된다. 정책적 견해를 대상으로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정치권에 압박을 가해 나가는 낙선운동이야말로 우리 정치와 정당이 모두가 입만 열면 주장하는 정책대결과 정책정당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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