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림 지음 디자인하우스 발행·전 2권 각 2만 5,000원
베스트셀러 영어 학습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의 저자 한호림(58)씨는 원래 홍익대 미대,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다. 한씨가 낸 또 하나의 기발한 책 '꼬리에 꼬리를 무는 sign'에는 그가 꼬박 20년간 세계를 돌며 직접 찍은 sign 사진이 무려 5,200컷 들어있다. 1982년 첫 해외여행 이후 2002년까지 아프리카에서 잉카, 스페인에서 노르웨이까지 동서남북으로 다니며 찍은 사진 중에서 골라낸 것들이다.
그가 말하는 sign은 인간이 만들어 낸 온갖 시각 디자인의 오브제의 총칭이다. 상점의 간판을 중심으로 도로 표지판 등 안내 표지와 건물 외양, 도시 미관은 물론 야생의 아프리카 초원의 생태까지를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 채집했다. 20년간 찍은 사진에 2년의 시간을 들여 그 문화적, 역사적 배경과 아이디어에 대해 현장감 있는 설명을 붙였다. 재미있는 이미지 북이기도 하고, 도시라는 조형물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며, 그 이미지들이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은 설렘을 불러 일으키는 여행 안내서도 된다.
2권 540쪽에 페루 안데스 산간마을 골목길 사진이 실려 있다. 침침한 회색 건물 밖으로 막대기에 붉은 천을 뭉쳐 마치 꽃같이 매달아 놓았다. 이건 무슨 'sign'일까. 한씨는 들어가서야 낡은 탁자와 의자 몇 개가 전부인, 우리 탁주와 비슷한 옥수수 술 치차(chicha)를 파는 술집 표시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1986년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찍은 한 보험회사의 심벌은 17년이 지난 후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됐다고도 소개한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우리 회사는 여기 있습니다'라는 글귀 위에 한 손에는 지팡이, 한 손에는 깡통 같은 물건을 든 인물상의 의미는 해독이 불가능했다. 한씨는 노르웨이 대사를 통해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캔들 라이터(candle lighter), 날이 저물면 가로등을 켜고 다니며 아이들을 귀가시켰던 이 파수꾼을 통해 보험회사는 '안전'의 의미를 말한 것이다. 그냥 보고 읽기만 해도 즐거운 호기심을 부추기는 교양서이자, 아이디어를 구하는 이들에게는 풍성한 자료의 창고가 될 만한 책이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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