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3월29일 미국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 윌리엄 내처가 베세스다 해군 의료센터에서 84세로 작고했다. 내처라는 이름이 귀에 익숙한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큰 권력을 누린 사람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내처는 미국 의회 정치 사상 불멸의 기록을 남긴 사람이다. 그는 1953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41년간 하원의원으로 있으면서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에 단 한 차례도 결석한 적이 없었다. 그 결과 내처는 무려 18,401회의 표결에 참가했고, 이것은 이 분야의 세계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는 작고하기 직전에도 이민 제한을 강화하려는 스미스 법안을 부결시키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내처의 사후에 그의 고향인 켄터키주 오언스보로에서 인디애나주 록포트를 잇는 다리가 들어섰는데, 오하이오강을 가로지르는 이 366m의 다리는 윌리엄 내처 브리지로 명명되었다.제대로 하자면 정치만큼 힘든 직업도 없다. 이익 단체 대표들을 포함한 유권자들과 동료 정치인들·행정가들을 끊임없이 만나 토론하고 이해하고 설득하며 공동체 구성원들의 상충되는 이익을 조절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는 고된 육체 노동이다. 게다가 정치는 정치인들이나 그 주변 사람들의 개별적 이해 관계를 공동체 전체의 이해 관계와 조화시키거나 궁극적으로 합치시켜나감으로써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꾀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고도의 윤리성을 요구하는 고된 정신 노동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정치만큼 안락한 직업도 없다. 그 안락한 정치를 이루는 것은 뇌물 수수, 거드름, 권력 남용, 호화 파티, 시찰을 빙자한 해외 유람 따위다. 새 정부 아래서는 정치가 좀더 고된 직업이 됐으면 좋겠다. 그 첫걸음으로 국회가 늘 의원들로 가득 차 있었으면 좋겠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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