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라크전 전략을 장기전으로 바꿨다. 미 전략가들은 거의 모든 활동을 마비시키는 모래폭풍, 위태롭기 그지없는 보급선, 예상치 못한 게릴라들의 후방 공격 등을 전략 수정의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군사전문가들은 전략 수정은 미·영 연합군을 바그다드 등 도시 안으로 끌어들여 게릴라전과 시가전을 병행하겠다는 이라크측 작전에 말려든 전략적 오류의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끊어질 위기의 연합군 보급로
연합군의 전술적 실패는 한 둘이 아니다.
우선 400㎞ 이상으로 지나치게 길어진 보급선이 거론된다. 20일 바그다드 공습과 동시에 이라크 안으로 진입한 지상군은 단 열흘치의 식량과 연료만을 준비했다.
이 때문에 미 제3보병사단은 식량 부족에, 쿠트에서 교전 중인 미 해병 제1원정대는 연료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병참선은 '사담 페다인'등 이라크 군사조직들의 공격으로 위협받고 있다. 이 때문에 보급선 안전 확보를 위해 미군은 부랴부랴 82공수부대 추가 투입을 추진하고 있다. 최첨단의 연합군이 통상적인 재래식 전력에도 못 미치는 게릴라들로 인해 비지땀을 흘리는 상황이 됐다.
걸프전 당시 투입된 지상군 병력의 절반에 불과한 9만 명으로 승리가 가능하다는 미군 지휘부의 판단도 결정적인 실수다. 바스라, 나시리야 등을 포위한 미·영 해병대는 국지적인 저항에 부딪쳐 병력을 최전방으로 빼지 못하고 있다. 바그다드 진격 선봉 부대인 제3보병사단은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다.
개전 초기 공습의 효과가 예상보다 낮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환부를 제거하듯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지휘부를 무력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습이 실패해 이라크는 군 지휘부, 최정예 공화국수비대, 후방의 게릴라 부대 등을 보존한 채 전쟁을 예정대로 치르는 형국이다.
승부는 다음 주말 이후에나
미 5군단장 윌리엄 웰레스 중장은 "이라크 병사는 우리가 워 게임을 하면서 상정했던 병사들이 아니었다"며 이라크측의 강렬한 저항을 인정했다. 이라크를 얕잡아보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바그다드 외곽까지 진격을 허용하면서 후방 도시에서 게릴라전으로 맞서는 양동작전에 성공한 이라크는 게릴라전을 배합한 도시 농성전을 지속할 것이다. 특히 월레스는 "우리는 전 국민이 무기를 들고 있는 나라와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연합군의 누구도 장기전의 불가피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외신들은 연합군이 남·북부 양쪽에서 바그다드 동시 진격(A 계획) 대규모 융단 폭격을 앞세운 '충격과 공포' 작전을 통한 이라크 지휘부 섬멸(B 계획) 유프라테스강 서안에서 측면 진공(C 계획) 등을 통한 조기 점령이 실패함에 따라 선(先) 이라크 중남부 전선 장악 후(後) 바그다드 침공 이라는 D 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전하고 있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27일 "바그다드를 포위한 채 반(反) 후세인 봉기를 기다릴 수 있다"고 밝혔다. 공화국수비대를 격파하더라도 인구 500만의 거대 도시 바그다드에서 시가전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장기전을 펼 수 있다는 얘기다.
서서히 고개 드는 책임론
장기전은 보급선을 확보하고 공화국 수비대를 격파하기 위한 미 지상군 증파에 최소 열흘 이상 소요된다는 점에서 불가피하다. 3보병사단을 지원할 텍사스 주둔 보병4사단의 전선 투입과 북부 전선 전력 정비에는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 전쟁의 분수령이 될 공화국수비대와 미 3, 4사단간의 바그다드 대회전은 다음 주말(5일) 이후에나 가능할 것 같다.
전쟁 양상이 몇 주가 아닌 몇 달의 문제로 확산되자 뉴욕 타임스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잘못 읽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영국 BBC 방송은 "부시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누구도 현 상황을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라며 양측 지도자들의 곤혹스러움을 설명했다.
장기전으로 미국의 재정·무역 쌍둥이 적자가 누적되고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되면서 0%대의 저성장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는 월가의 우울한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7월부터 본격화할 부시의 재선 선거 운동에도 거센 역풍이 예상된다는 지적이 많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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