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막연한 숭배와 읽기의 두려움 사이에서 자주 외면 받곤 한다. 좋지만 어렵게 느껴져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거나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쓴 골동품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린비출판사의 '리라이팅 클래식'은 이런 고정관념을 깨뜨리려는 기획 시리즈다. '지금―여기의 삶'을 담기 위해 고전을 다시 쓴다는 야심찬 의도에서 출발, 고전을 완전히 해체·재구성하는 모험이다. 1차로 학문공동체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의 젊은 필자들이 쓴 세 권이 나왔다.
원전의 얼개를 분해해 재배치하고 해설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원저자와 대화를 나누며 독자를 끌어들인다. 고전의 엄숙주의나 고리타분함, 특정 시공간에 갇힌 듯한 답답함을 멀리 날려버렸다. 특히 제 1권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은 이 시리즈의 특징에 가장 잘 맞는, 전혀 새롭고 강렬한 글쓰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 책은 대단히 유쾌하다. 읽기 쉽고 날렵하며 유머러스하다. 독자는 여러 차례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고미숙의 렌즈에 비친 연암은 유머의 천재이자 패러독스의 달인, 놀기 좋아하는 타고난 장난꾸러기이자 호기심의 제왕, 중세의 포스트모던 철학자로 지금 우리 곁에 바짝 다가온다.
'열하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예고편 컨셉을 '호모 루덴스가 펼치는 개그의 향연'으로 잡겠다는 식의 구절은 재기발랄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다.
연암의 사유를 들뢰즈의 사유와 겹쳐가며 서술하는 내용은 깊이가 결코 녹록치 않다. 들뢰즈의 개념을 빌어 그는 연암을 '천 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유목민)로 파악한다. 연암의 사상과 '열하일기'의 정수를 뽑아내는 솜씨가 감탄스럽다. 연암 시대 조선 지식인 사회의 주요 사건 중에 문체반정이 있다. 고문의 엄격한 틀에서 벗어난 소품이 유행하자 이에 격분한 정조가 과거 시험을 포함한 사대부 계층의 글쓰기 전반에 대해 대대적 검열에 나선 사건이다. 연암은 그런 글쓰기의 원흉으로 지목됐다. 이 지점에서 고미숙은 연암에 동지의식을 느끼고 있음이 틀림없다.
'열하일기…'에서 고미숙이 연암의 열혈 팬임을 드러냈다면 제 2권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저자 고병권은 니체의 친구를 자처하며 시대를 뛰어넘는 우정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
그는 차라투스트라와 동행하며 질문을 던지거나 니체를 옹호하면서 독자와 니체의 만남을 주선한다. 이 책에서 그는 '차라투스트라…' 뿐 아니라 니체의 주요 저작을 모두 말하고 있으며 그리로 이동하는 데 필요한 지도를 제시한다.
제3권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은 앞의 두 권과 달리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함께 쓴 원전의 목차를 그대로 따르면서 '계몽의 변증법'을 해설한다.
저자 권용선은 문학 전공자로서 자신의 장점을 살려 소설적 상상력을 도입하고 있다. 이를테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생애를 그들 자신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고, 그들의 기획회의를 가상으로 작성해 '계몽의 변증법'이 지적하는 이성의 광기를 설명하는 식이다.
덕분에 독자들은 어렵기로 소문난 '계몽의 변증법' 에 주눅 들지 않고 곧장 파고들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리라이팅 클래식'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고전을 다시 쓸 젊은 학자들을 찾아 100권이고 200권이고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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