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무엇이길래 평생 아파야 하나요?"29일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윤이상의 피아노 독주곡을 연주하기 위해 방문한 재독 재일동포 피아니스트 한가야(42·사진)씨는 '조국'이라는 화두를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았다. 1997년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 조총련계 동포였던 그의 국적은 한국도, 북한도 아닌 '조선'이었다.
해방 전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아버지는 해방 후 조총련계 민족학교에서 작곡, 지휘 등을 가르쳤다. 한씨는 "일본에서 조선은 없는 나라여서 여권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며 "정치가가 그은 선의 피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돌아 온다"고 설움을 섞어 말했다.
"82년부터 독일에 살았는데 비자가 나오지 않아 많이 힘들었습니다. 피아노를 배우던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스위스 바젤까지는 자동차로 30분에 불과하지만 국경을 통과할 때 남한이냐, 북한이냐를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중간'이라고 대답을 하지요. 생활 속에서 항상 선택을 강요 받았습니다." 국적 문제로 어렵게 참여한 88년 제네바 콩쿠르에서 1,2위 없는 3위에 입상했지만 그런 이유로 남북한 어디서도 눈길을 끌지 못했다.
"북아프리카 카나리아 제도 연주여행 때는 바다를 바라보며 부모님 고향인 제주도 생각이 났다"는 그는 10여년 전 제주도에 잠깐 들렀고 아버지를 고향으로 모시고 싶었다. 그러나 한쪽을 택하면 다른 하나를 버려야 했기 때문에 마음 고생만 심했다.
"아직 북한에 가보지 못했지만 북한 여권은 어딘지 미덥지 않았고, 일본에서 자라 친구도 많지만 일본이 왠지 미워서" 한국을 선택했다.
현재 독일 칼스루에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4명의 한국인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은 저를 동정해도 겪어본 일이 아니라 아픔을 같이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세상에 이렇게 슬픈 나라가 있을까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
이런 아픔을 예술의 원동력으로 삼은 그에게 윤이상의 음악은 가까이 다가왔다. "프라이부르크에서 사사한 악센펠트 선생님은 오보이스트 하인츠 홀리거나 윤이상 선생님과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덕분에 윤 선생님께 직접 레슨을 받을 기회가 많았고,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뵈었죠." 그는 '윤 선생님'이 입버릇처럼 "고향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세계적 지휘자인 오자와 세이지(小澤征爾)를 낳은 일본 도호(桐朋) 음악원을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대에서 전문연주자 과정을 거친 그는 일본과 독일을 중심으로 연간 20∼50회의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통영=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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