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은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이, 부산은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이 해결책을 강구 중이니 장관들도 나서달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5일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경인운하 건설, 경부고속철 부산 노선, 서울외곽순환도로 북한산 노선 등 논란이 계속된 정책들을 교통정리하기 위해 한 말이다. 그러나 장관들은 여전히 주춤거렸고, 논의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이 나서는 게 어떻겠느냐"는 수준에서 끝났다.고건(高建) 총리와 각료들이 임명장을 받아 참여 정부 첫 내각이 출범한 지 27일로 한 달을 맞았다. 1개월간 대통령만 보이고 내각은 보이지 않았다. 책임 내각의 모습이 실종되고 장관들은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릴 뿐이다. 이 때문에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던 주요 국책사업이나 정책의 해결은 대통령이 관심을 기울인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대부분 게 걸음을 걷는 게 현실이다.
노동 관련 쟁점은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추진 속도가 빠르다. 노 대통령의 의지 표명이 이어지면서 반대 입장에 섰던 부처들도 금새 입장을 바꿨다. 외국인 고용허가제의 부처 간 협의는 사실상 끝났다. 산업연수생 유지라는 산업자원부와 중소기업청의 목소리는 쑥 들어갔다. 불법 파업 노조와 근로자에 대한 회사의 손해배상소송이나 가압류 제한에 대해서도 이견이 조정됐다. 퇴직연금제도에 대해 재경부가 증시부양책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이견을 고수하고 있지만 노동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노 대통령이 최근 "노동부가 책임지고 중심이 돼 추진하라"고 못박았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기존 입장을 180도 바꾸고 말았다. 법무부는 26일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의 출국 시한을 3월말에서 8월말로 연기했다. 한술 더 떠 취업비자 발부나 '단순 노무체류 자격' 신설 방안까지 검토할 정도다.
노 대통령의 뜻에 따라 쾌도난마 식으로 일이 풀리는 경우도 있다. 보건복지부 보육·아동 업무의 여성부 이관이 대표적 사례다. 당초 이 문제는 대통령직인수위가 향후 정부혁신위원회에서 논의하기로 미뤘던 사안이다. 이 업무와 관련된 한 공직자는 "신문을 보고 알았다.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황당해 했다. 25일 국무회의에서는 한 발 더 나가 청소년(문광부)과 유아교육(교육부) 기능의 여성부 이전까지 논의됐다고 한다.
인수위에서 쟁점이 됐던 교육부 기능 조정 문제도 느닷없이 재등장해 가닥을 잡아가는 모양새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최근 노동부 업무보고에 배석한 교육부총리에게 '인적자원이 교육부에 가 있죠. 공급처(교육부)가 아니라 수요처(노동부)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했다"며 인적자원 관리 기능의 노동부 주도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반면 경제, 환경 등 부처간 견해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다른 쟁점들은 대부분 황소걸음이다. 특히 청와대에 관련 수석이 없어진 사회 분야는 딱히 조정 역할을 하는 곳이 없어 이견을 좁히기는커녕 논의의 장 마련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환경부와 재경부, 산자부가 논란을 벌이는 경유승용차 허용문제는 당초 지난달 19일 결론을 내리기로 했지만 한달 이상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환경부가 제기한 환경세 도입도 재경부는 아예 '쓰다 달다' 말도 없는 형편이다.
경제 분야도 마찬가지. 북핵 위기와 경제 사정 악화를 이유로 재벌 개혁의 속도조절에 들어간 가운데 개별 정책들도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이나 부처간 이견으로 표류하고 있다.
증권·선물시장 통합은 선물시장 부산 이전을 요구하는 지역 주민들의 저항에 막혀 있다. 지방 분권과 관련해 국세의 일부를 지방세로 전환하는 문제는 행자부와 기획예산처가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재경부는 떨떠름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 대전략인 동북아 경제중심국 추진도 우선순위를 둘러싼 정부(금융 중심)와 청와대(IT산업 중심) 이견이 채 정리되지 않았다.
정부 한 관계자는 "쟁점정책의 정리가 미뤄진 것은 체제가 제대로 잡히기도 전에 북 핵 위기와 이라크 전쟁 등 돌발 변수가 터졌기 때문"이라면서도 "그러나 결정권이 청와대에 집중돼 있기는 역대 정부와 달라진 점이 없다"고 말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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