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한 포기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황사(黃砂)가 흩날리던 며칠 전, 노모를 모시고 당신의 산소가 있는 중리에 갔습니다. 생전에 당신께서 그렇게 좋아하시던 술을 제가 따르고 삼배(三拜)를 하고, 노모는 술을 따르고 이배를 했지요. 이제는 '쪼그랑할멈'이 된 노모는 바람 불면 날아 갈 것 같은 헐거운 육신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6남매가 장성하도록 겪은 신산(辛酸) 때문이겠지요. 그 지긋지긋한 마음고생이 아직도 노모를 괴롭히고 있으니 이 불효한 자식, 머리털로 신을 삼고 혀를 뽑아 깔아 드린들 어찌 불효를 삼제(芟除)했다 하리오. 당신이 생전에 불효를 끼치던 미물(微物)은 벌써 쉰이 넘었습니다.
당신의 묘소 옆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평안도 성천이 고향이신 한 분이 묻혀있습니다. 망향의 슬픔을 안고 70 성상(星霜)을 보내다가 한 많은 인생을 마쳤다 합니다. 이젠 당신처럼 하늘나라에 올라 그리던 고향 분들과 상봉을 하고 혼백으로나마 자유롭게 고향의 동구 밖과 문전옥답을 밟아 보셨으리라 믿으며 그 분의 명복도 빌어 보았습니다.
하산하는 그 산기슭에는 샘이 퐁퐁 솟는 아름다운 실개천이 흘러갑니다. 봄을 맞은 초록의 이끼가 그렇게 싱그럽게 보이고 주변 얕은 산소에 핀 분홍 빛 진달래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더군요. 그 실개천엔 미나리가 무더기 무더기 싹을 틔우고 있더군요. 그래서 전 호미로 미나리를 뿌리째 캐내었고, 노모는 논둑에서 당신이 좋아하시던 달래를 캐셨지요. 그 맑디맑은 물에 미나리를 대강 씻어 집으로 가져와 잡풀과 이물(異物)을 골라냈습니다. 마침 제 생일이라 집에 들른 딸아이 편에 사돈댁에도 보냈고 저녁에는 미나리를 데쳐 된장과 고추장으로 버무려 입안에 가득 넣으니 싱그러운 그 맛! 어떻게 짧은 혀와 글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전 그렇게 생일을 보냈습니다. 풀 한 포기의 우주, 그 맛난 우주의 싱그러움을 맛보며 제가 태어났음을 자축했습니다. 아버님, 하늘나라에서 행복하시지요. 남겨두신 아들 놈이 지상에서 보낸 어느 하루의 소묘(素描)입니다.
/최춘명·강원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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