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서쪽에서 발견된 자갈층은 해자 흔적인가, 자연제방의 일부인가. 지난 12일 풍납동 삼표산업 사옥 신축부지 발굴조사 설명회에서 공개된 '성벽' 토층과 자갈층의 해석이 논쟁을 부르고 있다.국립문화재연구소는 당초 자갈층이 인공적으로 조성된 대형 해자 흔적이며, 출토 토기를 근거로 축성 시기를 기원후 2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잡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토층과 자갈층이 강변의 자연제방이며, 출토 토기는 자연취락의 흔적이므로 축성 시기를 앞당길 수 없다"며 해석의 재검토를 요구했다. 반대의견이 잇따르자 문화재연구소는 "발굴대상 지역을 성벽 중심쪽으로 확장해 조사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며 최종 결론을 유보한 상태이다.
충남대 박순발 교수의 반론과 문화재연구소의 입장을 들어 본다.
■ 박순발 교수 주장
필자는 풍납토성 서쪽에 대한 현장 관찰 결과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고고학 자료 인식에 대해 회의를 지울 수 없다.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공유돼야 할 1차 자료 인식에서 이처럼 괴리가 존재하는 것은 일종의 충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성벽의 기저부가 남은 것으로 인식, 발표한 토층은 인위적 축성토가 아닌 강변 자연제방의 퇴적층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 발표시 참가한 한 전문가는 이 층을 중국 전국시대의 판축 기법과 동일하다(한국일보 13일자 보도)고 말했다.
이러한 자연 퇴적층 사이의 한 층에서 출토된 완형 토기들 역시 축성과 관련된 의례행위와 연관시킬 수 없다. 동일한 층에서 옹관으로 판단되는 무덤이 발견된 점은 그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틀림없이 축성 이전 이 일대에 존재한 취락 유적의 일부일 것이다.
그리고 해자 흔적으로 발표된 이른바 '개흙층'은 해자 내부와 같이 고인 물의 수중에서 퇴적돼 형성된 게 아니라 홍수 등에 의해 형성된 강변 퇴적층 가운데 지하수면 이하에 위치한 층들이 환원 작용으로 변색한 층이라고 봐야 한다. 검정 또는 회청색의 환원층면 아래의 자갈층 역시 인위적으로 깐 것이 아닌 강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자갈층일 뿐이다. 또한 자갈층면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조선시대 자기편의 존재 등은 적어도 이 자갈면이 백제의 해자 바닥이 아님을 잘 말해주고 있다.
층위 인지와 같은 1차 자료 인식은 이후 진행되는 고고학적 추론의 기초가 되는 만큼 그 과정은 매우 엄정해야 한다. 더 이상의 적절치 못한 고고학적 추론으로 발전하여 역사 이해를 그르치기 전에 면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풍납토성의 축조 시기에 대한 조사단의 견해 역시 아직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축성과 관련된 의례행위의 산물로 해석한 토기는 조사단의 견해처럼 기원후 200년을 전후한 무렵의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층은 앞서 말한 것처럼 축성과는 무관한, 그에 앞선 취락 유적의 형성 시기를 말해줄 뿐이다. 성벽의 축조시점은 그보다는 늦어야 한다는 게 논리적 타당성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사지점이 가진 고고학적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인접한 곳에 성벽이 잔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풍납토성의 서쪽 성벽은 자연 해자 기능을 하였던 옛 한강변을 따라 축조됐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
■ 문화재연구소 입장
문화재연구소는 26일 문화재청에 제출한 풍납토성 삼표산업 부지 발굴 보고서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으며 일단 28일 열리는 문화재위원회 6분과 회의를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당초 자갈층이 성벽과 해자의 연관성을 밝혀주며, 개흙층까지 연결돼 있는 것은 풍납토성 주변에 대형 해자가 설치됐음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주장했던 데서 한 발 물러선 태도이다.
먼저 이번 발굴조사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개흙층의 성격에 대해 문화재연구소는 성벽에 인접해서 그런 퇴적층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인공해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서도 자연 해자에 의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자갈이 개흙 층에 박혀있는 것을 보아 인위적으로 조성됐다는 주장이다. 또한 자갈층 면에서 출토된 유물 중 조선시대 자기편이 일부 나온 것은 범람 등으로 토층이 뒤섞인 결과일 것으로 보고 있다.
성벽 중심부에서 나온 토기에 대해서도 당초 완형으로 출토됐다는 점을 근거로 의도적으로 매납(埋納)했다고 밝혔던 데서 후퇴해 자연적으로 휩쓸려 들어갔을 가능성도 인정했다. 이는 토층의 어느 부분까지를 의도적으로 축조한 성벽으로 보느냐에 따라 축조시기 추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문화재연구소의 당초 주장대로 토기 출토층이 인공적으로 조성된 토층과 같은 면, 또는 그 위의 면이라면 축조 시기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자연적으로 형성된 토층 위라면 늦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문화재 연구소는 "성벽 윗부분이 3m 이상 매립토로 교란돼 있어 성벽 상부의 축조양상을 볼 수 없다"며 "성벽 중심부을 절개해 정밀조사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일단 중심부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면 성벽의 어느 부분까지 인공이 가미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연구소는 또 현장설명회 당시 제기된 자갈층 밑부분에 대한 조사 결과 현재까지는 소금이나 목탄을 이용해 성을 단단하게 축조하는 염축이나 탄축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성벽을 튼튼하게 쌓기 위해 점질토와 사질토를 반복적으로 쌓은 것이나 출토 유물의 제작 연대가 200년 범위에 집중된 것으로 보아 성벽 축조시기는 앞당겨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번 발굴결과에 대해 문화재위원회 검토를 거쳐 현장보존이나 사적확대지정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최종 결론을 문화재위원들에게 넘겼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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