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중학교 학생들은 영어수업 시작 전에 칠판을 닦아놓거나 분필을 준비하지 않는다. 이런 일을 도맡는 '당번'대신 '영어 도우미'가 멀티미디어 시설이 갖춰진 다목적실에서 PC와 LCD프로젝터의 전원을 켜고, 헤드셋을 준비한다. 서울 동작구 장승중학교 2학년 영어시간. 아이들은 'Marathon'을 한국식으로 '마라톤'이라고 발음하는 한 친구의 목소리를 듣고 킥킥댄다. "자, 이 발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 선생님이 묻자 아이들은 일제히 "매러싼이요!"라고 답한다. '수여동사와 to 부정사'라는 딱딱한 문법도 인터넷 음성게시판을 통해 입체적으로 재미있게 익힌다.이번에는 아이들이 직접 준비한 숙제를 친구들과 푼다. '뒤엎다, 당황하게 하다'는 뜻의 'upset'이라는 단어를 앞 글자인 'u'만 쓰고 나머지는 빈 칸으로 남겨둔다. 그 밑에는 화난 사람이 무엇인가를 부수는 그림이 들어가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한글 문서에 붙인 것이다.
원래 주어진 숙제는 이 같은 '그림 단어장'이었지만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심화학습을 한다. 컴퓨터에 일가견이 있는 린나는 '나모 웹 에디터'를 통해 그림 뿐 아니라 MSN영한사전사이트의 음성제공기능을 이용, 단어의 발음도 붙여 왔다. 미정이는 'bookstore'라는 단어와 음성 밑에 'Where is bookstore? Near here?'라는 문장도 만들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멀티미디어 영어수업이 아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컴퓨터를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아이들은 때론 시키지도 않은 숙제도 해 온다. 일찌감치 영어를 포기했던 아이들도 마치 놀이를 하듯 즐겁게 수업에 참여한다. 김선미 교사는 "아이들의 창의성과 자발성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활용되는 장치는 요즘 교실마다 구비된 40인치 모니터와 인터넷이 되는 PC, 그리고 가끔은 특별활동실에서 LCD프로젝터와 헤드셋을 이용한다. 프로그램도 한글과 인터넷, 그리고 무료로 제공되는 각종 태그(웹페이지용 언어) 정도다. 김교사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스스로 과제를 준비하고 익히는 '자기주도적 학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교사가 ICT활용 영어수업을 한 것은 올해로 3년째.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해 오던 방이중학교 송형호 교사등 몇몇 교사들이 만든 '멀티영어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실 과제를 일일이 점검해야 하고, 사전에 컴퓨터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만만찮다. 게다가 느린 인터넷 속도,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보기에는 너무 좁은 TV모니터 등 문제도 많다.
하지만 고생한 만큼 보람도 크다.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나중에 다른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는 상당한 데이터베이스도 구축되기 때문이다. 송교사는 아이들의 숙제를 편집해 놀이도구처럼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는 '플래시 영어사전'을 만들었고, 김교사는 '그림사전'을 준비중이다. 김 교사는 "ICT수업은 언젠가는 전 학교로 확산되어야 할 방식"이라며 "수업환경이 좀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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