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미니멀리즘이나 일본에서 발흥한 모노크롬 회화는 그 성취와는 별도로 현상 그 자체,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세계를 보는 다른 눈을 가지고 싶다. 우리 전통 회화의 기운생동(氣韻生動), 즉 증명할 수 없는 기(氣)를 통해 보는 세계를 그리려 한다."한국 현대미술의 중진 이강소(60·사진)씨가 28일부터 6월15일까지 경주 아트선재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근작 회화 60여 점과 함께 처음으로 사진작품 20여 점과 영상, 판화를 두루 선보인다. 회화는 100호 크기 8점 외에 모두가 150∼200호의 대작이다.
이씨는 "그리기의 그리지 않는 상태를 지향하는 비움의 미학"(오광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추구하는 작가다. 그의 회화에서 구체적 이미지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오리, 사슴, 목선, 집의 형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구체적 형상으로서가 아니라 풍경의 요소로서일 뿐이다. 한동안 오리를 즐겨 그리는 바람에 이씨에게는 '오리 작가'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개인전에 나온 그의 근작은 대부분 빠르고 힘찬 붓놀림의 흔적, 아득한 화면의 빈 공간이 구체적 이미지를 압도하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씨 스스로 개인전 부제로 선택했다는 'The River Is Moving'이라는 한 미국 시인의 시구는 유장한 강물의 흐름 같은 작품들에 잘 어울린다.
그가 처음 공개하는 사진 작업도 마찬가지다. 이씨는 "우리는 흔히 사진을 볼 때 렌즈가 본 세계를 우리 스스로가 본 것으로 착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6년간 찍었다는 그의 사진은 '카메라가 바로 눈'이라는 관점에서 시간의 흔적을 담은 것들이다. 영상작업 2점에는 기차를 타고 중국을 여행하면서 본 차창 안팎의 풍경, 네팔에서 본 일출을 음악과 함께 담았다.
이씨는 한국적 정서를 부단히 실험적 조형언어로 표출해 온 작가다. 서울대 회화과를 나온 그의 1973년 첫 개인전은 엉뚱하게도 요즘으로 치면 퍼포먼스였다. 명동화랑에서 작품전을 구상하다가 우연히 들른, 당시 흔했던 주막의 탁자와 의자에 반해 그것들을 그대로 화랑에 옮겨 놓고 전시기간 내내 관객들이 막걸리를 마시게 한 것. 유준상 전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씨의 이 행위에 '프로세스 아트(process art)'라는 이름을 달아 포스터에 써 붙였다.
1975년 파리비엔날레에서는 전시장 바닥에 밀가루를 깔아 놓고 그 위에 닭의 한쪽 발을 끈으로 묶어 중앙의 말뚝에 매어놓아, 닭의 움직임의 흔적을 보여주는 '닭의 퍼포먼스'란 작품을 냈다. 미술의 영역 확장이 젊은 시절 그의 화두였던 셈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회화 작업으로 돌아와서도 그는 "캔버스 자체부터 탐구하겠다"며 캔버스의 올실을 뽑아서 그림을 그리고는 다시 올실 뽑기를 반복한 작품을 제작했다.
국내는 물론 도쿄와 뉴욕, 런던, 파리 등지에서 열린 40여 회의 작품전을 통해 이런 활동을 보여준 이씨에게 국제 화단은 동·서양의 정신을 통합한, 새로운 아름다움의 형식을 추구하는 작가라는 평가를 안겨주었다. 이씨는 "나는 단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설정'하는 작업으로 관객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 문의 (054)745―7075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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