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원서동20 골목 입구. 폭 4∼5m의 좁은 골목길을 들어서면 오른편에 나무벤치와 목재 벽펜스, 작은 화단으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휴식공간이 나타난다. 불과 5개월 여 전만해도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경비초소가 있고 쓰레기가 가득히 쌓였던 곳이다.두 평 남짓한 이곳의 이름은 '한 평 공원 전국1호'. 녹색서울시민위원회와 걷고싶은 도시만들기(도시연대)가 지난해부터 추진해 온 '동네 자투리땅 활용하기 프로그램'의 첫 작품이다. 쓸모 없는 작은 땅을 행정기관과 시민단체, 기업, 주민 등이 힘을 합쳐 주민 휴식과 녹지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운동이다. 올해는 옥수동이나 금호동에 2호를 만들 계획이다.
주민들이 만드는 공원
녹색서울시민위와 도시연대는 지난해 서울시내 후보지 30곳 중에서 이곳을 골라 첫 삽을 댔다. 경비초소를 포함해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일주일 동안 작업이 진행됐다. 총진행은 도시연대가, 설계는 조경설계 전문업체 서안(주)이 맡았다. 300만원의 경비도 녹색서울시민위가 부담했다. 하지만 공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민의 뜻대로 이뤄졌다. 꼼꼼한 공사 감리자가 됐고 '빨랫골 쉼터'라는 이름도 붙였다.
도시연대 김은희 사무국장은 "대상지 추천도 주민들이 했고, 주민의견에 따라 만들어진 설계안 중 최종안을 선택한 것도 주민들이었다"고 말했다. 쉼터가 만들어진 뒤에 컴퓨터 모니터가 버려지고, 한 번은 나무벤치가 부러졌지만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치우고 고쳤다. 돌아오는 식목일에는 동사무소와 주민들이 함께 이곳에 나무와 꽃을 심을 예정이다.
'한 평 공원'은 동네의 환경과 미관을 해치는 버려진 작은 땅을 환경친화적으로 활용하자는 게 취지다. 산동네로 올라가는 계단 옆 작은 빈 공간, 주택가 주차장 한 켠의 방치된 화단 등 생활폐기물이 쌓이는 손바닥만한 땅을 주민이 교감하고, 한 두 그루의 나무나 꽃이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마을마당, 쌈지공원, 생명의 나무 1,000만 그루 심기 등 이전에도 자투리 땅을 활용하는 시도는 많았다. 하지만 기존 사업이 일괄적인 행정사업 인데 비해 한 평 공원은 행정기관과 시민단체, 기업, 주민이 하나가 돼야 가능한 사업이라는 게 이들 단체의 설명이다. 때문에 쌈지공원 등이 사후관리가 되지 않아 다시 버려진 땅이 되기도 하지만 한 평 공원은 주민들이 스스로 관리해 유지된다.
운동이 확산되려면
한 평 공원 조성에 1,000여 만원 가량 드는 경비는 이 운동의 가장 큰 걸림돌. 녹색서울시민위원회는 내년까지 2, 3개의 시범공원을 더 만들 예정이지만 그 이후 계획은 아직 없다. 시민위원회를 지원하는 서울시도 "아직 타당성과 효과를 보기 위한 시범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장기 지원계획이 세워질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경렬 가회동장은 "빨랫골 쉼터 조성에 주민들 호응이 크고 동네 환경개선에도 도움이 돼 동 특화사업으로 주민들과 한 곳에 더 만들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녹색서울시민위 관계자는 "기업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져 한 마을에 한 두개의 공원을 만든다면 주민들에게 더욱 친숙한 기업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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