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의 장기화 조짐과 맞물려 국내 반전 여론이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발전하자 노무현 대통령의 속앓이도 깊어지고 있다. 당장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의 국회 처리가 지연될 정도로 정치권의 반전 분위기가 만만치 않은 점이 노 대통령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또 노 대통령이 중요하게 참작하는 시민단체의 움직임이나 네티즌의 반응도 반전, 파병반대 일색이어서 노 대통령의 운신의 폭을 더욱 좁히고 있다.이라크전 개전 직후 노 대통령이 대미 지원을 발표할 때의 표정이나 참모 등을 통해 흘러나온 얘기들을 종합하면, 노 대통령은 처음부터 이라크전에 대해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파병 결정과 관련, 노 대통령은 25일 여야 총무와의 만찬 회동에서 "단순 논리와 명분만으로는 안되고 전략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노 대통령은 "(전략적 결정에 대해) 국민을 설득,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은 쉽지 않다"며 사실상 난색을 표명했다.
앞으로도 전황 예상이 단기전 전망에서 더욱 빗나갈 경우, 노 대통령으로선 반전 여론과 전쟁 지원 필요성 사이에서 한층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전쟁이 예상 밖의 상황으로 전개되면 대응도 바뀔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근본 기조를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반전 여론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대미 지원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수정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단기전을 예상하고 추진했던 조기 파병도 재검토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파병 동의안의 국회 처리 지연으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물론 청와대 내에는 "미국 지원 정책을 후퇴시켜서는 안된다"며 보다 신중한 접근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노 대통령이 이날 양당 총무와의 회동에서 반전 여론에 따른 부담을 언급하면서도 "크로스보팅(자유투표)을 해서라도 이른 시일 내에 파병 동의안을 처리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은 이런 신중론과 일관성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반전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노 대통령으로서는 전황의 추이에 따라 앞으로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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