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1년 동안 추운 냉동실에서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해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니 편히 쉬시라우."25일 오전 10시 인천공항 출국장. 시동생과 함께 고향인 중국 하얼빈으로 떠나는 재중동포 이연영(37·여)씨의 손엔 돈을 벌기위해 한국땅을 밟았다가 한 줌의 재로 변한 남편 대헌명(37)씨의 유골이 들려져 있었다.
3년전 입국했다 불법체류자가 된 대헌명씨는 지난해 3월24일 반월공단의 산업폐기물업체에서 일하던 중 급작스런 병으로 숨졌다. 남편의 사망소식을 들은 이씨는 지난해 9월 급거 한국으로 달려왔지만 시체안치실에 누워있는 남편의 시신과 "영안실비용 등 1,200만원을 내기 전엔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병원측의 무정한 답변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난해 11월 남편의 유품가운데 고통스런 타향살이를 담은 남편의 일기를 발견, 공개했던 이씨는 남편의 장례비를 마련하기 위해 식당일 등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워낙이 박한 임금으로는 그 역시 항공료 등 1,000만원이 넘는 빚과 불법체류자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하늘도 무심하지 않았던지 남편의 일기가 공개된 후 절망에 빠진 이씨에게 희망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추석 '일제시대 하얼빈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익명의 할아버지가 300만원을 건네고 가는 등 작은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종교단체 등의 도움으로 겨우 빚청산을 한 이씨는 "남편에게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한 한국은 슬픈 땅"이라고 울먹이며 트랩을 올랐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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