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一行)이란 법명이 있다. 행(行)은 객체에 대한 의식의 작용, 즉 의지나 실천을 뜻한다. 그러니 일행은 오직 '일념으로 행한다'는 뜻이거나 '실천과 의지를 으뜸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모든 출가자는 석가 문중이란 뜻에서 붙은 석(釋)씨 성을 빼고 나면 베트남 출신 틱낫한 스님의 법명이 바로 일행이다.그 일행 스님이 한국을 방문, 가는 곳마다 잔잔한 감동을 던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국내에서의 그의 인기는 지금 가히 절정에 이르러 있다. 방한을 전후해 28종의 책이 나왔고 지난해 4월에 나온 '화'는 장기 베스트셀러가 돼 있다.
그의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 끄는 것일까. 그의 얼굴에서는 남방계 특유의 악착스러움이라면 몰라도 득도한 스님의 원융(圓融)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가르침 또한 동네 어른들 말씀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은근히 '과대 포장'을 의심하기도 한다.
적어도 지금 국내의 틱낫한 열기는 분명히 그런 의심을 살 만하다. 앞을 다투어 관련 서적을 쏟아 내는 출판 경쟁이나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생불'(生佛) 같은 찬사가 그렇다.
그러나 돈 될 일을 마다할 리 없는 자본주의의 생리를 생각하면 이는 당연하고, 의미 있는 책이라면 아무리 많이 나와도 좋은 일이지 나쁜 일은 아니다. 더욱이 틱낫한 스님의 힘이 그런 평범함, 세속과의 끊임없는 교감에서 나온 것임을 생각하면 일부의 비판론은 덧없다.
그는 수도자이기 이전에 역사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 온 실존적 인간이다.
1942년 16세의 나이로 출가한 그는 20여년을 수행에 정진했다. 그리고는 농촌개혁 운동과 반전 운동에 나서는 등 현실 참여에 몸을 던졌다. 65년 미국의 '북폭'으로 베트남 전쟁이 본격화하자 이듬해 미국으로 날아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만나고 미국 조야에 전쟁 중단을 호소하는 등 반전 평화운동의 불을 댕겼다. 69년 파리평화회담 때는 불교대표단을 구성해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베트남 통일 후에는 난민 구호 운동의 선두에 섰다. 75년 파리 근교에 세운 '스위트 포테이토'나 82년 보르도에 세운 '플럼 빌리지' 등 수행공동체도 애초에는 난민 구호 센터를 겸했다.
이런 경험에서 나온 그의 가르침의 핵심은 '마음 챙김'(Mindfulness)이다. 상황과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자각으로 불교의 수행법인 팔정도(八正道) 가운데 '정념'(正念)에 해당한다.
사제(四諦), 즉 고(苦)·집(集)·멸(滅)·도(道)의 진리에 이르기 위한 여덟 가지 수행 가운데 진솔한 마음으로 본성을 직시하고 잊지 않는 것이다. '머문 데 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住而生其心)거나 4제를 초월하는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의 가르침에 비하면 낮은 단계일 수 있지만 생활인에게는 훨씬 잘 와 닿는다.
그것이 그의 참 힘이다. 23일 서옹(西翁) 스님에게 바친 편액에 '지금 여기가 정토'(The pure land is now or never)라고 적었듯 그는 현재를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의 평화를 구한다.
높이 앉아 설법하기보다 대중과 함께 걷고, 호흡하며 소박한 깨우침을 돕는다. 법명은 '더불어 행함', 또는 '더불어 감'의 뜻이 맞을 것이다.
부박한 인심으로 보아 틱낫한 열기도 오래 가진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그의 흠을 찾기보다 잠시라도 그와 더불기를 권하고 싶다.
황 영 식 문화부장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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