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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무작정 지원, 능사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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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무작정 지원, 능사아니다

입력
2003.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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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미국의 옐로우스톤 공원을 방문했다. 참으로 광활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감탄을 자아냈던 수많은 명소 중에서도 숨을 일시 멎게 했던 '아티스트 포인트'의 경관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넓은 곳을 드라이브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것이 있었다. 도로 곳곳에 꽂혀 있는 팻말이었다. 거기에는 '동물에게 음식을 주지 마시오'라는 경고가 쓰여 있었다. '왜 이런 말이 적혀 있을까' 하면서 '아마도 음식을 주다가 곰 같은 위험한 동물들에게 다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얘기려니 생각했지만 개운치 않았다.귀국해서 얼마 후 어느 지인의 얘기를 듣고 의문이 풀렸다. 옐로우스톤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사람들은 곰을 비롯한 야생동물에게 여러 음식물을 주기 시작했다. 곰 같은 위험한 동물들은 사람들이 차려 놓은 음식들을 나중에 살그머니 와서 먹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수년 후 불행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공원이 문을 닫는 겨울이 지나 봄이 돌아오자 곰을 비롯한 수많은 동물들의 사체가 여기저기에서 발견되었다. 겨울 동안 굶거나 얼어 죽은 것이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가. 원인은 사람들이 선한 마음으로 음식을 제공했던 데 있었다. 수년 동안 사람들이 주는 음식에 길들여진 동물들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는 겨울 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자생력을 서서히 잃어 갔던 것이다.

이 얘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선은 선의의 동기가 항상 선의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도와준다고 하면서 그리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는 일이 때로는 남을 죽일 수도 있다는 냉엄한 진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옐로우스톤의 얘기는 특히 정부 지도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정책을 입안할 때 '쉬운 길'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첩경의 독사'라는 말이 있다. '쉽고 빠른 길에는 독사가 도사리고 있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하면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우리 정부는 몇 년 전 폐쇄되는 탄광촌을 카지노 타운으로 바꾸었다. 이것은 탄광촌을 폐쇄하면서 영국 정부가 취했던 정책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영국 정부인들 머리가 나빠서 그곳을 손쉽게 카지노 타운으로 만들지 않았겠는가. 그들은 어렵지만 생산적인 길을 택했다. 폐쇄된 탄광촌에 이른바 논스톱 행정 서비스를 통해 외국 유수의 기업들을 유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초등학생에게 물어보아도 어느 정부가 더 잘한 일인가는 분명하다. 최근 '로또 열풍'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복권에 의존하는 것은 매우 손쉬운 재원조달 방법이다. 정부가 사람들의 사행심을 부추겨서 재원을 마련하는 일에 맛들이면 갈 길은 명약관화하다.

재정지출의 측면에서도 옐로우스톤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보조금 지출이다. 보조금 지출이 수혜자들을 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인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하지 않고 손쉬운 포퓰리즘에 빠지면 결국은 그들을 해악의 길로 몰게 된다. 방대한 농업보조금의 경우에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그것이 농민들을 돕는 것인지, 결국에는 자생력과 경쟁력을 떨어뜨려 그들을 '죽게' 만드는 것이 아닌지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다.

이제 곧 대북 송금에 대한 특검이 시작된다고 한다. 특검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과거의 잘못된 것에 대한 사실 규명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의 이른바 퍼주기 식 지원방식에 대해 냉철히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 우리가 북한을 돕고자 할 때 어떤 방법이 궁극적으로 진정 북한을 돕는 길인지 국민적 지혜와 공감대를 모으는 일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옐로우스톤의 교훈을 되새기며 어려우나 생산적인 경제지원의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 계 식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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