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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거짓에 휘둘린 전쟁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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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거짓에 휘둘린 전쟁 보도

입력
2003.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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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10분, 영국 경기병 연대는 햇빛에 위용을 번쩍이며 러시아 진영으로 돌진했다. 러시아군 야포가 불을 뿜고 포연과 비명 속에 말과 병사들이 쓰러졌으나, 기병들은 군도를 휘두르며 적진을 헤집었다. 적이 뿔뿔이 흩어지고 기병대가 되돌아서는 순간, 측면 언덕의 적이 집중 사격을 가했다. 11시35분, 죽거나 죽어가는 병사만 남았을 뿐 러시아군과 마주 선 영국군은 한 명도 없었다."크리미아 전쟁이 한창이던 1854년, 영국 더 타임스의 윌리엄 하워드 러셀이 쓴 기사다. 그 때까지 정부 발표나 참전 군인의 기고에 의존하던 언론이 파견한 첫 종군기자였던 러셀의 전쟁 보도는 언론사에 획을 그었다. 여왕폐하의 충용스런 경기병 연대가 전멸한 전투를 비롯, 피아를 가림없는 전쟁의 참상을 전해 국민의 안이한 전쟁 인식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의 보도는 나이팅게일의 간호부대 파견에 계기가 되고, 무모한 전략을 고집한 전쟁 내각이 퇴진하는 빌미가 됐다. 군과 정부는 그를 박대하고 압력을 가하다 보도 규제까지 꾀했다. 그러나 규제 지침이 일선에 전달되기 전에 전쟁은 끝났고 러셀은 대중의 스타, 언론사의 신화가 됐다.

150년이 지나, 전쟁 보도는 오히려 후퇴했다고 분별있는 언론인들은 개탄한다. 전쟁 수행자들은 통제와 거짓 선전과 조작을 일삼는 반면, 언론은 그릇된 애국심과 무지와 편견에 갇혀 진실 아닌 거짓을 열심히 전한다. 최악의 사례, 걸프전의 진정한 패자는 언론이라는 지적에 항변할 언론은 많지 않다.

언론이 거짓에 휘둘린 단적인 증거는 정밀폭격으로 인명피해가 적다는 보도다. 실제 미군이 쓴 정밀유도폭탄은 전체 폭탄 8만8,000톤의 7%에 불과했다. 무차별 폭격에 희생된 이라크군과 민간인은 미군 집계로 사망 10만, 부상 30만 명이다. 바그다드 방공호 한 곳에서 민간인 1,600명이 몰살했다.

그러나 그 잔혹상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은폐됐다. 방공호 오폭을 전한 언론은 후세인의 선전에 놀아난 것으로 매도됐다. 미군의 유조선 폭격으로 기름이 유출된 것도 후세인의 악마적 환경 파괴로 왜곡됐다. 전쟁의 참상과 책임을 숨기고, 고상한 명분으로 치장한 선전이었다. 진정한 전쟁 목적, 냉전 종식 뒤 국제 질서 변화를 통제하려는 의도는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

두번째 걸프전을 주도하는 미·영 언론은 그렇다치고 우리 언론이 그들의 논리와 시각을 추종, 실패한 전쟁 보도를 되풀이하는 것은 자괴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한 목적이 석유 이권 등 전략적 패권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을 과거보다 부지런히 전하기는 한다. 세상 여론과 사회의 이념적 지평의 변화를 반영한다. 그러나 막상 본격 전쟁 보도에 접어들면, 상식과 객관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미국이 정밀 폭격을 크게 늘려 민간 피해가 없을 것이란 선전을 곧장 보도 주제로 삼고, 첫날 폭격으로 대뜸 후세인이 죽거나 다쳤다고 근거없이 추리하는 주장에 매달린다. 21세기 전쟁이 명색이 한 나라 지도자의 목을 노리는 야만과 무법으로 치닫는 것에 무심한 것도 문제지만, 한 나라와 국민을 유린하는 전쟁의 실체를 흐리는 술책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에게도 크게 영향을 미칠 전쟁을 부시와 후세인의 대결로 단순화하는 따위의 삼국지적 안목으로는 정부가 참전 명분 삼은 국익이 무엇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정부와 언론이 할 일은 따로 있다. 미국과의 동맹을 지키는 것이 국익이라고 떠드는 것은 유치하다. 정부와 여론 사이에서 언론이 할 일은 오직 전쟁의 진상을 탐구하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보다, 진상과 거짓을 가리는 분별이 언론에는 한층 중요하다. 바그다드의 살육과 파괴는 지금부터 본격화할 것이다. 그 실상을 바로 봐야 한다.

강 병 태 편집국 부국장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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