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에서는 진용(金庸·79)의 작품을 극화한 '의천도룡기'가 방영되면서 중국인들의 유별난 무협 드라마 사랑이 다시 한번 확인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송된 '황제의 딸'에서 건륭 황제로 열연한 장톄린(張鐵林), 쑤요우펑(蘇有朋) 등 스타들이 등장하는 이 드라마를 주요 방송국들이 앞다퉈 방영하고, 인터넷에는 드라마를 심층 분석한 네티즌들의 글이 가득하다. 시청자층도 어린 꼬마에서 청년, 할머니까지 다양하다. 무협 드라마 열풍이 얼마나 거센지 우리나라 방송위원회에 해당하는 중국 광전총국이 "이제 그만 자제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다.중국인들은 왜 무협 드라마에 열광할까. 우선 웅대했던 과거를 통해 '대중화(大中華)'의 자존심을 되찾고, 나아가 다시 도약하는 중국의 힘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는 분석이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무협 드라마는 광대한 국토와 위풍당당한 황실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의 전통적인 무협 숭상 정신을 이유로 든다. 중국인들은 '무(武)'와 '협(俠)'의 의미를 엄격히 구분한다. '무'가 단순한 무술 기능이라면, '협'은 그 바탕에 흐르는 정의 구현 사상 또는 수련의 정신적 경지를 일컫는다. 의로운 삶을 위해 힘을 가져야 하지만 삶에 대한 철학적 바탕이 없는 무예란 아니함만 못한 허무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중국인들도 하늘을 슝슝 날아다니는 화려하고 시원한 무술 연기에 열광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열풍의 핵심에 놓인 인물이 다름 아닌 진용이다. 우리나라에도 진용 마니아가 꽤 있지만, 중국에서는 베이징대 중문과의 권위 있는 교수가 '진용 학술 토론'을 주도할 정도로 연구의 심도가 깊다. 천문학계에서는 새로 발견한 별에 '진용'이란 이름을 붙이고, '진용군웅전'이란 제목의 네트워크 게임은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다.
'의천도룡기'를 비롯해 '소오강호' '천룡팔부' '신조협려' 등 진용의 작품들은 새 감독과 배우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탄생한다. 20일에는 진용의 또 다른 작품 '사조영웅전'이 시청자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TV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진용식 무협 드라마의 가장 큰 특징은 흑백 논리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파와 사파의 대결, 그리고 정파의 최후 승리는 진용이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나름의 논리를 바탕으로 개인 또는 민족의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누가 옳고 그른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의미의 덩어리인 것이다.
진용은 무협 드라마를 '흥행과 진리의 변주곡'으로 승화시켰다. 중국인들이 다분히 통속적 매개체를 통해 진짜 악인은 누구이며, 누가 그를 심판할 수 있는가라는 진지한 고민에 접근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이재민·중국 베이징대 박사과정 (중국 매체 및 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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