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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49>고로쇠 나무의 값진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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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49>고로쇠 나무의 값진 선물

입력
2003.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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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에 쌓인 눈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길을 나서면 온 산과 대지에 봄의 기운이 가득합니다. 눈앞에 삐죽삐죽 내미는 연두빛 새싹이 보이지 않더라도, 성급한 봄꽃의 길맞이가 없더라도, 한창 물이 오르고 있을 나뭇가지의 탄력이나 부드러운 땅과의 감촉으로 때를 알 수 있음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합니다.이즈음 산엘 가면 자주 만나는 간판의 하나가 고로쇠나무 수액(樹液)을 판다는 내용입니다. 이른 곳에서는 이미 2월부터 수액 채취를 시작했을 터이니 훨씬 일찍 봄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 바로 이들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수액으로 워낙 유명하니 고로쇠나무라는 이름은 익숙할 터이지만 식물로서 잘 아는 이들은 생각보다 드문데,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와 같은 집안의 나무입니다. 잎이 단풍나무처럼 5∼7갈래로 갈라져 있으나 잔 톱니가 없고 가을엔 노란색으로 물드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물론 날개달린 열매도 있구요. 나무는 눈여겨 보지 않은 채 오직 몸에 좋다는 몸 속 물에만 관심을 둔다면 나무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 듯합니다.

수액이란 나무의 도관을 흐르는 액체를 말합니다. 나무에게 있어서도 물은 곧 생명이어서 물을 통해 양분을 포함한 모든 물질이 이동하고, 세포내의 모든 화학반응이 일어납니다. 봄이 되어 새로운 생명활동을 시작한 나무들이 땅속 뿌리에서 물을 빨아들여 잎 끝으로 증산하는 그 중간과정에 있는 수액을 사람들이 중간에 일부 덜어가는(가로채는) 것이 바로 우리가 마시는 고로쇠 수액인 것입니다.

수액이란 모든 나무에 다 흐르지만 특히 고로쇠나무를 비롯한 단풍나무 집안의 수액이 많고 달지요. 캐나다 국기에 나오는 잎이 있는데 이 역시 단풍나무 집안인 설탕단풍입니다. 그 나라를 여행하면 흔히 파는 메이플시럽이란 것도 바로 이 수액을 졸여 만든 천연 당분입니다.

이 수액은 연중 내내 흐르지만 경칩을 전후로 한 초봄에만 채취할 수 있는 것은 이 시기에 밤과 낮의 기온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밤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면 땅속 뿌리들은 수분을 흡수해 줄기를 채우고, 다시 낮이 되어 기온이 올라가면 도관이 팽창하며 밖으로 배출하는 수액의 압력이 세져 작은 구멍을 통해 쉽게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산에 갔다가 링거주사를 꼽고 있는 환자들처럼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수액채취통을 보면 마음이 짠해 집니다. 그래서 이 일이 나무에 해롭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관련 연구자들이 이 문제로 실험을 해보니 지나치지만 않다면 무해하다는 결과가 나왔죠. 이에 따라 관청에서는 나무의 지름 30㎝를 기준으로 그 미만은 1개, 그 이상은 2개로 구멍을 제한해 수액 채취 허가를 내주고 있습니다. 대신 어린 나무는 손을 대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과나무에서 열매를 따듯, 고무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하듯, 소고기를 먹기 위해 가축을 키우듯 우리는 나무가 주는 잉여의 선물을 받아 쓸 수 있는 것이겠지요. 한 나무에서 매년 수만 원의 소득이 나오고 보니, 일부 지방에선 논에 벼를 키우듯, 산에 이 나무를 심어 키우는 일도 생기고 있습니다. 문제는 늘 그렇듯 지나친 욕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 두 해 소득만을 생각해 나무가 우리를 위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지나치게 채취해 결국 나무가 쇠약해지고, 구멍을 뚫었던 곳을 방치해 병균이 침입하게 만드는 것이죠. 이런 모습을 보면 마치 매일 황금 알을 낳아주던 거위에 더 큰 욕심을 내어 죽인 주인과 같은 욕심을 보는 듯 합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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