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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디자이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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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디자이너들

입력
2003.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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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의 디자이너 김문규(28)씨는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켠 후 곧장 인터넷에 접속해 하루 종일 인터넷에 빠져있다.하지만 누구도 따가운 눈총을 보내지 않는다. 세계 각국의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트렌드를 연구하며 앞으로 출시될 삼성전자 제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깔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그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얻은 김씨의 별명이 '색 쓰는 남자'다.

같은 사무실의 디자이너 송혜진(27)씨는 일하다가 답답함을 느끼기라도 하면 디자인경영센터가 입주해있는 빌딩의 11층부터 15층까지 오르내리며 동료들을 찾아가 수다를 떤다.

에어컨에 설치된 LCD 패널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송씨는 동료들과 수다를 떨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막혔던 업무의 돌파구가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그리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할 수 있고, 또 그 일을 통해 꿈까지 이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분명 행운아다.

직장인들이라면 꿈꾸는 일터의 조건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더구나 이들이 종사하는 디자인 분야는 기업 경쟁력의 핵심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이건희 삼성회장도 올해 초 "디자인과 같은 창의력이 21세기 기업 경영의 마지막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삼성전자 제품에 '삼성다움'을 입히는 것. 이상연 과장은 "어떤 제품과 섞어 놔도 '이게 삼성이다'라고 알 수 있는 것이 '삼성다움'"이라며 "개별 제품의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브랜드 차원의 디자인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는 소비자들의 감성을 정확하게 읽어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수요까지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는 300여명.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본관에 입주하지 않을 정도로 개성이 강하다.

'색 쓰는 남자' 김문규씨는 '삼성맨'이 된 지금도 힙합 스타일을 고집한다. 장발에 턱수염을 기른 외모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주는 차민호(35) 과장은 퇴근하면 사내 밴드 '엔터'의 멤버로 변신한다. 심지어 사내에서 킥 보드를 타는 디자이너도 있을 정도다.

때문에 술 문화도 결코 일방통행이 아니다. '주당파'가 술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는 대신, '비주류파'에게는 단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을 권리가 있다. 차 과장은 "디자이너를 획일적인 조직문화로 묶을 수는 없다. 각자 취향대로 즐기는 것 뿐"이라고 말한다. 또 정해진 출근 시간이나 퇴근 시간도 없다. 오로지 자신이 맡은 분야대로 정해진 시간까지 프로젝트를 완성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개성이 강한 만큼 프로 정신도 투철하다. 지펠 냉장고 소재 개발과 외관 인테리어를 담당하고 있는 최은하(25)씨는 마음에 드는 소재와 컬러를 찾기 위해 수시로 지방을 돌아다닌다. 최씨는 "품평회를 앞두고 좋은 디자인이 나오지 않으면 며칠이라도 꼬박 밤을 새운다"면서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에 드는 소재나 컬러가 나왔을 때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게다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의 고통도 크다. 차 과장은 "일하다가 막히면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좋은 디자인을 보면 카피의 유혹을 느끼지만, 이 바닥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뻔히 알고 있는 것이라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고 말한다.

또 디자인이 실제 제품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기술적 한계 때문에 자신이 머리 속에 그렸던 디자인을 포기해야 할 때도 많다.

"여백의 미(차민호)", "심플(김문규)", "고객의 마음을 읽는 디자인(송혜진)", "감성적인 디자인(최은하)" 등 자신이 좋아하는 디자인 취향은 전부 달랐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였다. 패션에 '아르마니 스타일', '페라가모 스타일'이 있듯 자신의 이름을 내건 디자인을 통해 전자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언젠가 '차민호 스타일'의 전자제품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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