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라크 전쟁에 대해 이라크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있다. 온 세계가 하루 24시간 전파매체를 켜 놓고 생생하게 이라크 전황을 지켜보고 있다. 이라크 인들의 공포와 분노를 접어둔 채 불구경하듯 전쟁 구경을 하고 있다는 것이 때로는 잔인하게 느껴진다.미·영 동맹군은 연일 바그다드를 공습하고 있다. 폭탄이 우박처럼 쏟아지고, 거대한 버섯구름이 사방에서 치솟고 있다. 미국은 그것이 융단폭격이 아니고 첨단기술로 목표물을 정확하게 겨냥하는 정밀폭격이라고 주장한다. 가공할 첨단무기가 오히려 현실감을 떨어뜨려 화염에 휩싸인 바그다드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전쟁은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이 전쟁이 광폭한 독재자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고,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으로부터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정복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악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것이다.
전쟁에 반대하는 나라나 사람들 역시 이라크 국민의 안전과 세계 평화를 내세우고 있다. 보는 입장에 따라 전쟁은 선일 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다. 반전론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미국의 오만한 일방주의를 맹렬하게 비난한다.
국내에서도 여러 주장들이 분출하고 있다. 정부의 파병 결정에 대해서도 찬반이 엇갈린다. 한·미 동맹관계를 생각할 때 파병이 당연하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북핵 문제에서 평화적인 해결을 주장해온 정부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고 파병까지 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는 비난도 있다.
우리 사회가 빠른 속도로 다양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라크 국민들과 생사를 함께 하겠다며 전쟁터에 남아있는 고집 센 4명의 반전 운동가들에게는 손을 들 수밖에 없다.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격렬하게 벌어지는 반전 시위에 발 맞춰 한국의 반전 시위도 뜨거워지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시시각각 TV를 통해 이라크의 전황과 세계의 반전 시위를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생각들 속에서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거북한 말이 하나 있다. '국익'이라는 말이다.
세계 각국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서 지지 반대 방관 등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각자 분명한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내심 국익을 저울질하기에 바쁘다. 전쟁이 조기에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면서 전후 질서와 복구에 누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라크는 벌써 각자 국익을 챙기려는 각축장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현명하게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정부는 700여명의 공병과 의료 지원부대를 파병하고 전후복구와 난민구호에 1,000만달러 정도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여론은 대체로 정부 결정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파병 결정을 내리면서 '국익'이라는 토를 단 것은 듣기 민망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일 대국민 담화에서 "세계와 국내의 반전여론에 고민해 왔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동향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한미 동맹관계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 국익에 가장 부합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반전여론을 무마하려는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과거 미국에 대한 자신의 발언을 의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익에 부합하므로 미국을 지지하고 파병하겠다는 말은 지나치게 자기 방어적이고 원색적이다. 참전에는 국익 이상의 명분과 가치가 있어야 한다. 국익을 내세우는 전쟁은 침략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대통령의 일거일동은 국익에 부합해야 하고 모든 정책과 결정은 당연히 국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 '국익'인가. 온 세계가 이라크전을 실시간 대에 지켜보는 무서운 세계화 속에서 좀더 국제화하고 세련된 표현과 의식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국익을 위한 파병이라니, 너무 거칠고 왜소하지 않은가.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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