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의 인계철선 역할은 매우 낡고 불공정한 말이다." "용산기지는 가능한 한 빨리 이전하고 미2사단은 향후 몇 년 내 한강 이남으로 이전한다." "한국이 원하면 미군은 내일이라도 떠날 것이다."미 국방부 동아태담당 고위당국자는 18일 워싱턴주재 한국특파원들과의 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새 정부 들어 주한미군의 위상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나온 익명을 전제한 이 관계자의 말은 주한미군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입장을 가장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45년 9월8일 인천에 상륙한 미 제24군단 휘하 2개 사단의 진주로 시작된 주한미군은 그간 한반도 안정을 위해 큰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32만여명을 파병해 한국을 지켜냈다. 휴전과 함께 대부분이 철수한 후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 추가철군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여전히 현재 3만7,000여명의 병력으로 남북한간의 군사력 균형추를 맞추고 있다.
주한미군은 양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69만명에 달하는 한국군이나 무려 117만명을 상회하는 북한군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병력이다.
그러나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주한미군은 엄청난 의미를 갖고 있다. 주한미군은 그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비롯, 서부전선 방어를 담당하고 있는 보병2사단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인계철선(tripwire)'의 역할을 맡아왔다. 북한군이 남침할 경우 미군이 자동적으로 개입하게 됨으로써 북한군의 남침에 대한 고도의 억지력을 발휘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전방 미군의 존재는 1994년 북한핵 사태 이후 우리 국민에게 또 다른 의미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군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미 백악관은 그해 6월 한국측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비밀리에 영변 핵시설을 공습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당시 미 국방부측은 이 계획을 내심 반대했다. 북한을 공습하면 휴전선에 배치한 각종 장사정포 등으로 반격에 나선 북한의 화력에 2사단 병력이 궤멸당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북한 남침에 대한 억지력으로 기능하는 미2사단이 거꾸로 대북 공습을 고민케 하는 '덫'으로도 간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 시사주간지 US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지는 지난해 10월 "미 국방부가 올 여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기 위해 한국과 사전 상의없이 북한을 기습공격하는 방안을 비밀리에 입안했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미 국방부 등이 "대북선제공격 의사가 없다"고 부인하고 콜린 파월 국무장관 등 미 정부관계자도 수 차례나 이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미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최근 김진표 경제부총리의 '대북 공습 발언'파문에서 보듯 이 문제는 현재진행형임에 분명하다.
어쨌든 미 국방부 관계자의 말대로 주한미군은 인계철선의 족쇄를 벗기위해 한강 이남으로 이전하거나 아예 철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제 새 정부는 미국이 인계철선 역할을 더 이상 못하겠다는 의미를 깊이 새겨야할 시점이다.
휴전선 인근에 더 이상 미군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우리의 안위는 아랑곳 없이 홀가분하게 언제든 대북공습을 감행할 지도 모른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20일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미국이 무슨 일이든 못하겠는가.
이처럼 복잡한 상황 속에서 '한미간의 수평적 관계 재정립'을 주창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조만간 미국을 방문한다. 노 대통령은 "한국의 동의없는 대북공격은 없다"는 것을 미국으로부터 확약받아야 할 것이다.
윤 승 용 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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