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벤 린드크비스트라는 스웨덴의 문명비평가가 있다. 탐험가로도 유명한 그는 '놈들을 모조리 섬멸해 버려라'라는 책의 저자다. '놈들'이란 비(非)유럽인을 말한다. 유럽인의 숨겨진 야만성을 폭로한 이 책은 외국어로도 번역되어 널리 읽혔다.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에 따르면, 이 책과 유사한 경향의 저서들로 인해 스칸디나비아 지식인 사이에는 유럽 전통의 어두운 면에 대해 극히 비판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 책의 출발점은 히틀러가 자행한 유대인 학살의 문화적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 점에서부터 유럽 지식인이 오랫동안 찾아 헤맨 역사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히틀러의 유대인 섬멸은 유럽에서 처음 있었던 전대미문의 사건이 아니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민족의 과학적 섬멸은 유럽문화의 끔찍한 전통이다. 독일 외에 영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 식민지를 약탈한 모든 서방 열강이 이 악습에 물들어 있다. 그들은 유대인 뿐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콩고 흑인도 학살했다. 지금도 '백인'으로 인정하는 유대인의 비극은 강조하면서, 히틀러 손에 100만명 이상이 살해된 '비(非)백인' 집시 민족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흑인과 인디언을 살해한 유럽인이 유대인을 학살한 것은 시간 문제였다는 것이다.
■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보며 린드크비스트의 관점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미국이 주장하는 '정의로운 전쟁' 뒤에 인종 차별적 요소는 없는가. 박노자 교수는 "이런 책을 읽고 유럽인의 야만성에 눈을 뜬 이들이 많다는 것은 북유럽 문화가 상당히 발전했다는 의미" 라고 해석한다. 그런 분위기 덕분일까. 스칸디나비아 3국 중의 하나인 핀란드에 세계 최초의 여성대통령 타르야 할로넨에 이어 여성총리가 등장하게 되어 화제다. 중도당의 아넬리 예텐마이키 당수가 곧 총리로 취임함에 따라 두 여성이 나란히 핀란드를 이끌게 된다.
■ 핀란드에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있다. 문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나라로 밝혀진 것이다. 영국문화원이 얼마 전 유럽과 영어권 1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위가 핀란드, 2위가 독일, 3위가 프랑스였다. 그 뒤를 스웨덴 네덜란드 캐나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아일랜드 등이 잇고 있다. 핀란드는 1년간 예술행사와 미술관 등의 운영비로 국민 1인당 약 100달러를 지출하는 데 비해, 미국은 6달러에 그쳐 꼴찌를 차지했다. 여성 정치와 문화국가로 가는 핀란드가 훌륭해 보인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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