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셀 코리아'(한국주식 팔아치우기) 와중에서도 유독 열심히 사들이고 있는 주식, 최근 3년 연속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낸 '작지만 강한' 은행.요즘 부산은행은 '인기 상한가'이지만 심 훈(沈 勳) 행장은 틈만 나면 직원들에게 기합을 준다. 직원들이 자만에 빠질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부산은행은 전체 자산 중 신용카드부문의 비중이 작년말 현재 3.3%에 불과하고 가계대출도 30% 수준이어서 대형 시중은행과 달리 연체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심 행장은 "연체율 축소실적을 본 뒤 인사를 하겠다"며 인사 날짜를 3월말로 미뤘다. 또 지금까지 임기가 1년이었던 임원들에 대해 올해는 6개월마다 재신임 평가를 하기로 했다. 부임 후 3년 사이 경영실적이 눈에 띄게 좋아져 최근 연임이 사실상 결정된 심 행장은 이제 한숨 돌릴 만도 한데 이렇듯 오히려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고 있다.
2000년 7월 금융구조조정 와중에서 존망의 위기에 처했던 부산은행에 당시 한국은행 부총재였던 심 행장이 부임했을 때만해도 주위에선 걱정의 눈길이 많았다. 2002년 1월부터 실시되는 예금부분보장제를 앞두고 예금 이탈 조짐이 나타났고, 모 지방은행에 흡수 합병된다는 설도 퍼진 데다 부산은행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불신도 깊었기 때문이다. 심 행장은 "당시 귀족적이고 권위적인 중앙은행 임원이 비즈니스 마인드가 필수적인 지방은행장으로 잘 변신할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이 호기심 반, 우려 반으로 바라봤다"고 회상했다.
그렇지만 불과 3년만에 부산은행은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 작년 창립 이후 최대 규모인 1,48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는 등 3년 내내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고, 규모면에서도 3년 사이 총자산은 약 3조5,000억원이나 증가했다. 총 수신도 30% 이상 늘어났고 부실여신인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취임 당시 8.74%에서 2002년말 현재 2.22%로 대폭 낮아졌다. 외국인 지분율도 8.8%에서 20%대로 늘어났고, 주가 상승으로 최근 시가총액 면에서 외환은행을 능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부산은행 도약에 가장 중요한 전기가 된 것은 2000년 말 부산시금고 유치. 당시 부산시에서는 "부실한 부산은행이 3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어떻게 취급하겠느냐"며 불신했지만, 심 행장은 "시금고를 따내지 못하면 부산은행은 망한다. 만약 유치에 실패하면 행장을 그만두고 부산시장 낙선운동을 하겠다"며 통사정 반, 협박 반으로 부산시를 압박했다. 이렇게 해서 대형 시중은행을 제치고 시금고를 유치한 것이 신뢰회복의 첫 걸음이 됐다.
취임 다음날부터 어깨에 띠를 두르고 부산진시장 등을 돌며 지역밀착 경영에 나섰던 심 행장은 시금고를 유치하던 날 "향토은행으로서 지역발전과 궤를 같이하겠다"며 부산은행 이익의 지역사회 환원을 약속했다.
그 후 그는 약속대로 주민들에 대한 거래조건도 유리하게 해주었고, 올해는 주주들에게 은행권 최고의 배당률을 안겨주었다. 2001년 10월에는 임직원 1인1단체 가입운동을 전개, 2,500여명 직원이 557개 지역사회단체에 가입해 후원 및 봉사활동을 하도록 했고, 작년 12월엔 행장을 단장으로 하는 '지역봉사단'을 발족했다. 과거 부산은행 증자에 참여했다가 경영악화로 큰 손실을 입었던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매일 현장방문 등 강행군을 한 탓에 부임 초기 난생처음으로 병원에서 링거주사를 맞기도 했다.
심 행장은 "고객과 주주에 대한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의미에서 부산은행은 각종 경영목표 등을 과장하지 않고 발표해 100%이상 달성하고 있다"며 "이런 모습을 보고 부산 시민들이 차츰 신뢰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요즘 다른 지방은행들은 부산은행을 벤치마킹 대상 1호로 삼고 있다. 대형 시중은행에 밀려 존립기반이 위태롭던 지방은행에 새로운 비전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심 행장은 그러나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우선 지방은행이면서도 전국은행보다 재무구조가 우량한 일본 시즈오카 은행처럼 성장하고, 궁극적으로는 총자산 기준 미국내 4위인 와코비아 은행처럼 지방은행에서 글로벌은행으로 성장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심 행장은 취임 당시 한은 퇴직금의 80%는 부산은행에 정기예금하고, 20%는 부산은행 주식을 사는데 썼는데 당시 1,640원 하던 주가가 지금은 4,700∼5,100원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월급을 타면 400∼500주씩 사 모은 것이 지금은 3만1,000주 정도가 됐고, 전체수익률은 100%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가로 CEO를 평가한다면 은행장 가운데 단연 1위인 셈이다.
2006년까지 연임하게 된 심 행장은 "앞으로 재무제표 개선과 인력양성에 더욱 힘써 3년 후에는 내부에서 유능한 CEO가 나오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 심 훈 行長은 누구
▲1941년 부산 출생
―부산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 예일대 경제학 석사
―가족:모친 박명희씨, 부인 김화자씨와 1남1녀
―취미:테니스 등 각종 운동, 영어공부
▲1966년 한국은행 입행
▲1988년 한은 비서실장
▲1990년 한은 조사 제1부장
▲1992년 한은 자금부장, 뉴욕사무소장
▲1994년 한은 이사
▲1997년 한은 감사
▲1998년 한은 부총재
▲2000년 7월14일 부산은행장 취임
● 부산은행은…
1967년 지역 중소기업 육성이란 취지로 지역 상공인에 의해 설립됐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거래기업 부도여파로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BIS) 비율이 급락,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영개선권고를 받는 수난을 겪었지만, 심 훈 행장 부임 이후 다시 초우량 지방은행으로 도약했다.
전국 199개 지점 중 180개가 부산에 있어 이 지역에선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을 합한 것(120여개)보다 점포수가 많다. 은행 자동화기기도 부산 내에 1,200대가 있다. 부산 주민의 85%가 부산은행 고객일 정도로 고객 기반이 튼튼하다.
■내가 본 심 훈
대학 다닐 때 나는 그를 부산에서 온 친구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 후 사회로 나와 그가 한국은행에서 이사, 부총재로 승승장구할 때 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을 하며 그를 다시 한 번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그때 그를 한은 총재감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는 무슨 일에나 완벽을 추구한다. 엄격한 원칙주의자이며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또 성실하며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대화를 즐기고 유머로 주위 사람들의 긴장감을 풀어준다. 주량도 남에게 뒤지지 않지만 절제하는 편이다.
그의 탁월한 리더십은 스스로 끊임없이 발전하기 위한 채찍질을 늦추지 않는 데서 오는 것 같다. 그런 만큼 구성원들에게도 동참을 강조한다. 다만 요구 수준이 그의 완벽주의 만큼이나 높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학연, 지연 등 연고주의를 배격하고 엄격한 능력위주의 인사관리를 발전의 원동력으로 믿는다.
최근 부산은행의 비약적 발전을 지켜보면서 'CEO 주가'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한 사람의 CEO가 조직을 활성화하고 어려움에 빠져있던 지방은행을 역동적인 중심은행으로 발전시킨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이런 노력이 높이 평가돼서 그는 작년에 각종 기관에서 '베스트 CEO'로 선정됐다. 무엇보다 최근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부산은행 지분을 크게 늘리는 것이 그에 대한 평가라고 하겠다. 인사철만 되면 논란이 되는 낙하산 인사나 은행장 배척운동이 부산은행에는 없다.
오히려 모든 임직원과 노조까지 나서 그가 부산은행을 떠나지 않도록 만류한다. 그는 부산에서 자랐고 부산을 사랑하는 부산 사람이다. 지역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부산은행 발전의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이재웅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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