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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예측가능한 삶 사는 독일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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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예측가능한 삶 사는 독일인들

입력
2003.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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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은 안정을 중시한다. 이는 무엇보다 이들 일상의 안정을 보장해주는 제도들에서 드러난다. 역사 깊은 사회보장 및 연금제도가 갑작스러운 실업과 재난, 퇴직 후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 없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 발달된 의료보험제도가 사고나 발병 시 한푼의 추가비용 없이도 병원 치료를 받게 해주고, 유럽 모든 도로에서의 고장과 사고를 도맡아 처리해 주는 독일 자동차 클럽(ADAC)은 가입자들의 안정된 휴가를 보장해준다.안정을 희구하는 독일인의 심리는 철저히 계획되고 계산된 그들의 일상사에서도 드러난다. 버스나 전철, 전차 정류장마다 붙어있는 배차 시간표는 다음 번 버스나 전철이 도착할 시간을 1분 단위까지 알려준다. 매달 전화요금 청구서에는 언제, 어디로, 얼마만큼 통화했는지 그 내역이 1초 단위까지 정산되어있다. 수도 및 전기, 난방비는 매년 사용한 만큼 정확히 계산되어 이듬해 집세에 산정되며, 계량기 검침원이 집을 방문하는 시간은 4∼5주 전에 공지된다.

공연장이나 소규모 갤러리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문화 행사 일정 역시 이미 1년 전, 최소한 몇 달 전에 배포되는 팸플릿에 실리며, 40개가 넘는 TV 방송국의 프로그램 또한 매주 발행되는 TV 잡지에 한달 분 방영 계획이 빽빽하게 수록되어 있다.

일상의 사소한 일정에서부터 크고 작은 대소사가 계획되고, 그에 따른 실행은 삶에 대한 장기적인 예측과 계획을 가능하게 한다. '몇 년 동안 돈을 모아 몇 년 후 집을 장만하겠다'는 식의 장기적 삶의 계획은, '몇 시에 집에서 나와 몇 분에 오는 버스를 타면 어김없이 약속시간에 닿을 수 있다'는 하루 저녁의 계획을 실현하게 해주는, 안정된 일상의 기반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언제 올지 모를 버스를 기다리며 발을 구르며, 언제 오를지 모를 전세값에 불안해 하는 한국의 샐러리맨들이 거시적 삶의 계획을 갖기란 그래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변경이나 변동, 우발상황은 독일인을 매우 불쾌하고 불안하게 한다. 계획에 없던 약속이나 즉흥적 제안 등이 환영 받지 못하고 심지어 예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독일의 버스나 전철에서 표 검사를 거의 하지 않는데도 시민이 반드시 표를 사는 이유도 항상 삶의 안정감을 잃지 않으려는 이들의 사회적 습성 때문이다. 퇴근 후 술 한잔하자는 동료의 전격 제안이 한국에서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우리에게 일상이 늘 '탈출하고 싶은' 예측불가의 전장터라면, 독일인에게 일상은 자의적이고 혼란스런 외부세계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개인적 질서의 공간이기 때문이리라.

김 남 시 독일 훔볼트대 문화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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