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분야에서 디지털화가 진전되고 있지만 영화만은 아직도 필름을 영사기에 걸어 상영하는 아날로그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단기간에 많은 영화관에서 동시에 상영하는 이른바 '와이드 릴리즈' 방식이 유행하면서 필름의 소각량이 크게 늘고 있다. '한국이 영화 필름 쓰레기 소각장이냐'는 불만이 제기될만한 상황이다.1988년 직배 영화가 영업을 한국에서 시작한 이래 UIP, 콜럼비아, 폭스, 워너, 디즈니 등 5대 직배사와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는 드림웍스 영화는 국내에서 상영되는 영화 필름의 전량을 영국이나 태국 그리스 등 제 3국에서 복사해 와 한국에서 상영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직배사 관계자는 "외국 본사에서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해적판을 만드는 나라라는 인식을 갖고 있어 한국 지사에서 프린트를 요청하면 엄격한 보안 장치를 한 외국 공장에서 만들어 보낸다"고 설명했다.
영화 프린트는 한 벌에 300만원 내외로 우리나라 직배사가 수입송장(인보이스)을 본사에 보내면 프린트를 보내주는 방식이다. 직배사는 한 번에 평균 30∼40벌, 여름이나 추석, 설 연휴 등 성수기에는 100벌 이상의 영화 필름을 수입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수입된 영화 필름은 상영이 끝나면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소각된다. 소각비용은 ㎏당 200∼300원. 국내에서는 정식 대행업체를 통해 필름을 소각하기 때문에 환경 문제와 관련한 위법 행위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무분별한 필름 소각이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내 대형 직배사의 배급 경쟁도 필름 소각량을 더욱 늘리고 있다. 씨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배급사는 흥행 가능성이 있는 영화의 경우 100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하는 물량 경쟁을 벌여 수요 예측을 통해 필름을 받는 직배사보다 더욱 필름 소각량을 늘리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다.
영화의 유통기간이 1, 2주에 불과한 최근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필름 소각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족 영화를 많이 제작하고 있는 디즈니는 기업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 2년 전부터 지사를 통해 상영된 영화 프린트를 전량 미국으로 수거해 가고 있다. 디즈니 관계자는 "미국으로 영화 필름을 보내면 이를 재활용, 인조가죽 옷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 영화의 경우 중국, 베트남 등 동남아 시장 진출 시 필름을 재상영하는 방안을 활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이다.
자막을 입힐 경우 필름이 손상돼 재활용하기 어렵지만, 자막이 없는 한국 영화의 경우 외국에 수출, 현지어 자막을 입히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양적 성장에만 치우쳐 온 한국 영화계가 이제는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됐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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