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충한 거리, 허름한 행색의 이라크인 모습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나빴지만 바그다드 시민들이 보여준 평온과 침착함은 뜻밖이었다. 전쟁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왔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폭탄이 언제 머리위로 떨어질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이들이 보여준 웃음과 친절을 설명할 수 없다.이라크제 알―카트 자동소총으로 중무장한 이라크 군인들은 길거리에서 먼저 손을 흔들고 인사를 건넸다. 항상 기자를 감시했던 이라크 정보요원도 기자가 우울한 기색을 보이면 전쟁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위로했다. 전쟁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돌자 가이드는 "위험하니 빨리 떠나는 게 좋겠다"며 차량을 제때 구할 수 있을지를 걱정했다.
길거리에서 아라비아 전통차를 마시며 표정 없이 앉아 있던 시민들은 기자에게 차를 대접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들과 통하지 않는 말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뒤 일어나면서 잠깐이나마 이들을 의심하고 경계했던 게 부끄러웠다.
팔레스타인 거리 알 쿠드스 초등학교를 찾았을 때는 수업중임에도 거의 모든 교실에 일일이 얼굴을 내밀어야 했다. 옆 교실에 기자가 온 것을 안 다른 교사와 학생들이 창문과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며 자기네 교실에도 와달라고 성화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어린이는 여러분을 사랑한다" 고 말하고 교문을 나서려는데 7,8세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뛰어와 쪽지 하나를 건네고는 수줍은 듯 도망쳤다. 하얀 종이 위에 연필로 이라크 국기를 그리고 그 밑에 아랍어로 뭔가 써있었다. 가이드는 이렇게 번역해 주었다."우리는 한국어린이를 사랑해요."
황유석 특파원/바그다드에서=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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