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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화코드]<5>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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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화코드]<5> 명상

입력
2003.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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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선(禪), 영성…. 한 때 낯설고 생경하게 느껴지던 말들이 흘러 넘친다. 우리 문화 곳곳에도 침투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서울 종로5가 연강홀에서 공연중인 타악 뮤지칼 '야단법석'(野壇法席). 승복을 입은 연주자들이 바라를 울리며 흥겹게 춤추고 노래한다. 행자 스님들이 산사에서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수행과 춤, 수행과 노래. 어울리지 않는 듯한 조합이지만 선방에서 죽비 내려치는 소리, 빗자루로 절 마당 쓰는 소리처럼 고요한 '선풍(禪風) 타악'이라고 한다.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자아 성찰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 기획 취지이다.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마인드 스페이스(Mind Space)'전도 명상과 사색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고 그 과정에서 치유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가장 뚜렷한 출판 분야를 비롯, 여러 문화 장르에서 명상, 선 등에 대한 깊은 관심을 찾아 볼 수 있다. 명상 음악은 오래 전부터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명상 수행을 하면서 듣는 음악, 치료용으로 사용하는 음악, 긴장을 풀기 위한 릴랙스 음악, 동식물을 위한 음악, 자연의 소리를 이용한 음악 등으로 다양하다. 학교나 병원, 사회단체 등에서도 명상 강좌가 수시로 열고 있다. 이제는 대학에서도 명상 치료를 가르치는 과목이 개설돼 있다. 심지어 얼마 전 한 TV 코미디 프로그램에 '명상개그'란 코너가 등장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명상에 대한 현대적 관심은 그 뿌리가 그리 깊지 않다. 1980년대에야 본격적으로 다양한 명상 기법이 일반에 알려졌다. 지금은 전통적 요가의 명상부터 오쇼 라즈니쉬의 다이내믹 명상 등 인도 명상법, 민족 비전의 수련법을 강조하는 선도 계열의 수행법 등 여러 갈래의 명상 기법이 혼재해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이다. 전통적 의미의 명상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까지 명상으로 포장되고 있다. 여기에 선승들의 전유물이었던 선(禪)이 대중화, 여름철마다 산사에서 수련대회가 열리고 있고 기독교의 영성 수련까지 활발하다.

명상이 이렇게 대중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는가', '이렇게 살아도 좋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0여년간 명상 수련을 해왔고, 지금도 매주 '바라보기'명상 모임을 이끌고 있는 박석 상명대 중국어문학과 교수는 "한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제에만 정신을 집중해 열심이었는데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사람이 돈 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며 "'어떻게 사느냐'하는 새로운 모색의 하나로 명상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구 사회가 자본주의 질서 하에서 경제적·물질적 성취에만 관심을 두었다가 60년대 말∼70년대 초 이에 대한 회의가 일면서 동양의 정신적 전통에 관심을 갖게 된 것과 유사한 현상이 우리나라에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명상이 대중화하면서 오히려 그 본래의 뜻이 희석되거나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명상이 건강법이나 양생법으로 오인되거나 신비주의적인 어떤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명상 관련 서적을 오랫동안 번역해 온 인터넷 사이트 '명상나라(www.zen.co.kr)' 대표 손민규씨는 "명상은 기본적으로 인생의 과제, 즉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마음 속에 품게 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힐링이나 심리치료 등 명상의 부수적 기능이 명상의 본질로 우선시되는 풍조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요법은 긴장을 이완하는 등 치료 효과가 있긴 하지만 명상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음 속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 단계일 뿐이다. 명상, 수행 등을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흐름도 문제다. 일부 수행단체의 경우 돈을 벌기 위해 빠른 시일 내에 효과를 느끼게 하는데 주력하고, 공격적 경영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눈총을 받기도 한다. 틱낫한 스님의 명상 서적이 붐을 이루고 있는 것도 출판계의 '이벤트 기획'의 결과라는 지적이 무성하다.

전문가들은 또 명상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현실을 도외시하거나, 지나치게 투쟁적이 되는 등 부작용도 많다고 전했다. 명상 서적의 아름다운 글귀에 도취해 현실을 망각하거나 일시적 신비 체험에 빠져 현실에서 일탈하는 비사회적 인간형으로 옮겨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갖가지 수행법이 소개됐지만 아직 우리의 명상 문화가 그리 뿌리가 깊지 않은 것도 이런 문제를 부추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진지한 내면의 욕구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니까 한번 해볼까'하는 마음으로 명상을 나서고 있다. 박 교수는 "명상을 단지 정신적 액세서리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며 "아직 우리 명상계 수준은 겉 멋을 부리는, 서구를 좇아가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라즈니쉬 명상書 80년대 휩쓸어

명상의 전통은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 한국 불교가 선종의 굵은 맥을 이어왔고 구도자의 나라 인도의 숱한 명상가들의 저술도 다양하게 소개됐다.

그러나 명상이 우리나라에서 대중적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1970년대 말부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베트남 출신 틱낫한 스님의 저서에 이르기까지, 약 30년 간의 국내 명상서적 출판 흐름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정현종 시인이 옮긴 인도 사상가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1979)이다. 우리를 옭아매는 지식 철학 종교 믿음 등 모든 굴레에서 풀려나 영혼의 자유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 이 책을 시작으로 명상서적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됐다.

이듬해 인도인 오쇼 라즈니쉬의 가르침을 모은 '마하무드라의 노래'(석지현, 홍신자 옮김)가 나오면서 라즈니쉬 바람이 불기 시작해 80년대를 휩쓸었다. 세계적 명상 포교사로 세계 각국에 수십만 명의 추종자를 거느렸던 라즈니쉬는 1990년 사망할 때까지 4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국내에 소개된 것만도 200종이 넘는다. 그의 우화집 '배꼽'은 2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지난해 4월 출간돼 70만 부 정도 팔린 베스트셀러 '화'를 비롯한 틱낫한 스님의 책이 20여 종이 번역된 것과 비교하면 라즈니쉬 바람이 얼마나 거셌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라즈니쉬는 국내 명상서적 흐름을 주도하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꼽힌다.

크리슈나무르티, 라즈니쉬에서 출발한 명상서적 출간은 80년대 말 봇물을 이뤘다가 90년대 들어 주춤해졌다. 라즈니쉬 열풍이 잦아든 자리에 라마나 마하리쉬, 니사르가다타 마하라지 등 인도 명상가를 비롯해 태국의 아잔차 스님,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로 알려진 불교 구도자 파드마삼바바, 티베트 망명 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 라마 등의 가르침이 뒤를 이었다.

국내 작가로 명상서적 분야의 개척자는 류시화이다. 1983년 번역 출간한 라즈니쉬의 장자 강의서 '삶의 길 흰구름의 길' 로부터 70여 종의 명상서적을 번역했다. 그 중 80만부 이상 팔린 바바하리다스의 '성자가 된 청소부'를 비롯해 상당수가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를 통해 인도 성자들의 삶과 사상이 국내에 널리 알려졌고 명상서적이 출판 분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명상은 종교적 수행이나 심오한 철학적 성찰 뿐 아니라 심리학, 정신치료, 동양사상에서 현대과학의 돌파구를 찾는 '신과학', 건강이나 마음 다스리기 기술 혹은 수단으로서의 명상 수련, 심지어 초능력과 점술 등 주변적인 것까지 마음과 정신을 다루는 온갖 영역에 걸쳐 있다. 따라서 명상서적 출판도 다방면으로 가지를 치는 양상이다.

최근에는 현대 물질문명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안으로 북미 원주민 인디언의 지혜를 구하는 책이 쏟아지는가 하면, 초월적 존재로부터 영혼의 메시지를 받았다는 영매들의 책 등 옆길로 빠진 책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80년대부터 명상서적의 기획과 집필에 종사해 온 한 작가는 "최근 명상서적에는 인생의 근원적 지혜를 구하고 실천하는 명상의 본류에서 벗어나 사이비 냄새가 짙은 것이 잡다하게 섞여 있어, 명상의 본질에서 보자면 붐이라기보다는 쇠퇴에 가깝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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