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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3.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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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더 다닐 곳이 있습니까?” 가끔 받는 질문입니다. 여행지 취재를 한지 4년이 넘었으니 들을만한 얘기이죠.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니면다닐수록 다닐 곳은 더 많아집니다.” 농담이나 궤변이 아닙니다.흔히 우리의 국토를 ‘손바닥만하다’고 합니다. 물론 외형적으로 땅덩어리가 큰 나라는 아닙니다. 그러나 단순히 넓다고 다닐 곳이 많은 게 아닙니다. 관건은 그 땅덩어리의 주름입니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으로 이어진지형적 주름, 그 자락에 숨어있는 문화의 주름, 그리고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삶의 주름입니다.

다리미로 주름을 죽 펴면 이 땅은 아마 10배, 100배는 넓어질 것입니다.

모두 다니려면 4년이 아니라 40년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지형적으로 주름을 느낀 것은 인제의 아침가리에 갔을 때입니다. 거대한산자락 속에 들어있는 맑은 골짜기입니다. 입구부터 커다란 소(沼)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저 건너편에 과연 계곡이 있을까. 믿음을 갖고 걸음을 옮겼습니다. 완전한 원시의 계곡입니다. 감상은 간단합니다. ‘우리 땅에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있구나.’

문화의 주름은 양양 미천골에서 느꼈습니다. 선림원터. 한때 2,000명이넘는 승려들이 수도했다는 절입니다. 지금 건물은 없습니다. 돌 몇 개가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탑과 부도입니다. 모두 나라의 보물로 지정되어있습니다.

그만큼 균형감 있고 아름답습니다. 황량한 터에서 만나는 옛 사람의 예술혼. 세월의 무게와 문화의 향기를 가슴 찡하게 느꼈습니다.

달마산과 미황사에서는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습니다. 하얗게 빛나는 바위 봉우리. 우리 국토의 끝에 이렇게 잘 생긴 산이 있구나. 동백숲을 따라올라가는 등산로도 환상적이었습니다. 단청을 입지 않은 미황사 대웅보전은 ‘부처의 세계란 무릇 이래야 한다’는 자성을 갖게 했습니다.

땅끝마을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한반도의 끝에서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땅의 끝은 없다’는.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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