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초등토론연구회가 주최한 '학생찬반토론대회' 결승토론의 한 장면. '채팅용어사용'을 두고 찬성측인 서울 상도초등학교 어린이들과 반대측 당곡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세 명씩 팀을 짜서 2주간 각종 자료와 관객·심판관에게 배포할 반박논리를 준비해 나왔다. 결론은 찬성측의 승리. 어느 한편의 의견이 옳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한편이 상대편의 근거에 대해 더 철저하게 따지고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대회는 올해 11월에도 열린다. 지금까지는 지역교육청 단위로 열렸지만 이번에는 서울시 전체로 확대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토론공화국'을 천명하고, 평검사들과 공개 토론을 벌인 후 그 열기가 교실에도 확산되고 있다. 서울 토론교육연구회 소속 160여명의 교사들은 수업시간이나 자율학습시간을 이용, 아이들과 교과과정 혹은 일상생활을 주제로 수시로 토론을 벌인다.서울 인헌초등학교에서는 '교내에 자판기를 설치해야 하는가'를 두고 2학년의 한 학급에서 토론을 했다. '건강' 단원에 실린 '탄산음료수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발단이 되었다. 위례초등학교 4학년의 한 학급은 주로 어린이신문 기사에서 학생들이 주제를 정해 일주일에 다섯 번씩 토론 시간을 갖는다. 최근에는 '여학생도 출석번호 1번이고 싶어요'라는 설문조사를 토대로 '꼭 남학생이 1번이어야 하는가'라는 토론을 벌였다. 한 어린이가 "무조건 남학생이 1번을 맡으면 여학생들이 억울하고 싸움이 날 수도 있다"고 반대의견을 제시하자 다른 어린이가 "그렇다면 여학생들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모조리 바꿔야 하는가"라며 한층 토론을 심화시키기도 했다.
토론팀은 제비뽑기를 통해 찬·반을 결정한다. 인헌초등학교 임광택 교사는 "그래야 상대방의 입장까지 감안하며 양쪽의 논지를 세울 수 있다"며 "자신의 입장에 따라 찬성 혹은 반대에 나서면 자칫 우격다짐으로 흐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자기 주장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는 훈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무조건 말을 많이 해서는 이길 수 없다. 입론과 작전타임, 반대신문, 최종 변론 등 정해진 시간을 지켜가며 15∼25분에 토론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토론의 승패 역시 아이들이 투표로 결정하는데 저학년의 경우 공부 잘하는 친구의 손을 들어 주기도 한다. 위례초등학교 박순희 교사는 "토론 후 이런 점들을 하나하나 짚어 나가는 게 더 공부가 된다. 주제를 잘 숙지하지 못한 채 무작정 승패결정에 참여했던 아이들이 다음에 더 철저하게 준비를 해 온다"고 말한다. 박 교사는 또한 "토론과 공부는 별개인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역할분담도 확실해 세 명의 토론 팀 중 웹서핑을 잘 하는 사람은 근거 작성에, 말을 조리있게 잘 하는 친구는 발표에, 순발력있는 친구는 논박에 나선다.
때론 낭비도 있지만 토론은 승패를 떠나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토론으로 아이들이 더 여물어진 것은 물론, 교사들에게도 재발견의 기회가 된다. 지난해 1학년을 대상으로 토론 교육을 했던 서울 신동초등학교 성인진교사는 "왕성한 발표력과 논리적인 토대가 대단했다"며 "자신들의 능력과 부족한 점들을 교사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느끼며 성장해 간다"고 말했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 가정에서 토론교육 이렇게
토론 문화는 학교에서 수업을 통해 단시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혀야 하기 때문에 가정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정에서의 토론교육은 자유스러운 의사 표현능력,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할 줄 알며 자기의 주장을 분명히 밝힐 줄 아는 태도, 사물이나 사회현상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이 그 핵심이다.
일상적인 문제를 토론으로 접근하는 훈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예를 들면 아이가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릴 때 무조건 혼내는 대신 '쓰레기를 마구 버리면 환경이 얼마나 나빠질까'를 물어 아이 스스로 결과를 유추할 수 있도록 한다. 아이가 새로 나온 장난감을 사 달라고 떼를 쓸 때, 학원에 가기 싫다고 억지를 부릴 때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어떤 행동을 할 때도 스스로 논리와 근거를 마련하는 힘을 기르게 되고 부모 입장에서도 훨씬 효과적으로 생활지도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토론에 임하는 부모의 마음자세부터 달라져야 한다. 자녀들의 질문이나 요구사항들이 어떤 것이든지 무조건 무시하거나 질책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을 수용하든 거절하든 그에 따른 분명한 이유나 증거를 제시해 주어야 한다. 또한 항상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행동을 부모님이 솔선수범해 자녀들로 하여금 본받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좋다. 자녀들이 읽는 책을 부모가 같이 읽고 주제나 주인공의 행동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토론으로 이끌 수 있으며, 자녀들과 함께 한 여행에서 겪은 일로 찬반으로 토론할 수도 있다. 또 지나친 컴퓨터게임을 나무라지만 말고 토론으로 자녀들 스스로 바람직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말하는 형식을 의도적으로 바꿀 필요도 있다. 평소 부모님과의 대화는 문장이 아닌 몇 개의 단어들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나, 가끔은 어떤 말을 완전한 문장형태로 말하게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이유나 증거를 들어가며 조리 있게 말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곽 영 화 서울초등토론교육연구회 회장·서울성동교육청 초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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