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아카데미상 명예상 수상자로 선정된 피터 오툴(70·사진)은 처음에 이 상을 10년 후로 미뤄달라고 요구했다. "아직 정정한 현역이어서 언젠가 내 실력으로 오스카를 거머쥘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새파란 눈동자의 오툴은 그를 대뜸 국제적 스타로 부상시킨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로 첫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 오른 이래 '내 생애 최고의 해'(82)까지 모두 여섯 차례나 후보에 올랐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오툴처럼 자기 전문분야에서 뛰어난 재질을 보이고도 생애 한 번도 아카데미상을 타지 못한 감독이나 배우가 적지 않다. '갱스 오브 뉴욕'으로 감독상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콜세지도 상복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성난 황소'(80)와 '좋은 녀석들'(90) 등으로 후보에 올랐었으나 고배를 마셨다.
왕년에 스크린을 주름 잡은 남자 배우로서 오스카상을 못 받고 명예상으로 만족해야 했던 대표적 인물이 케리 그랜트다. 할리우드 최고의 신사였던 그랜트는 활동 초기인 41년과 44년에 각각 '페니 세레나데'와 '고독한 마음'으로 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각각 게리 쿠퍼('요크 상사')와 빙 크로스비('나의 길을 가련다')에게 상을 빼앗겼다. 연기파 중의 연기파인 몽고메리 클리프트도 데뷔작인 '수색'(48)과 '젊은이의 양지'(51), '지상에서 영원으로'(53) 등으로 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상은 받지 못했다. 그리고 요절한 제임스 딘은 생애 세 작품 중 '에덴의 동쪽'(55)과 '자이언트'(56)로 주연상 후보가 됐으나 역시 상복이 없었다. 로버트 미첨, 에드워드 G, 로빈슨 피터 셀러즈 등은 아예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고, 댄스 영화의 황제였던 프레드 아스테어도 명예상으로 만족해야 했다.
왕년의 유명 여배우로 오스카상을 못 받은 스타는 그레타 가르보 (명예상), 마를렌 디트리히, 글로리아 스완슨, 바브라 스탠윅(명예상), 캐롤 롬바드, 진 할로, 리타 헤이워드, 로렌 바콜 및 마릴린 먼로 등이 있다.
명감독 중에 오스카상을 받지 못한 대표적 인물이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이다. 영국 태생의 히치콕은 미국에서의 첫 작품 '레베카'(40)가 오스카 작품상을 받았는데도 감독상은 존 포드('분노의 포도')에게 양보해야 했다.
귀재 오손 웰즈는 25세에 감독과 배우로 데뷔한 '시민 케인'(41)으로 감독, 각본 및 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각본상(공동)을 받는 데 그쳤다. 천재감독이자 배우인 찰리 채플린도 명예상만 두 번을 받았을 뿐이다. 스탠리 큐브릭도 '닥터 스트레인지러브'(64)와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68) 를 비롯한 모두 세 편으로 감독상 후보에 올랐으나 끝내 상을 못 받고 최근 작고했다.
현존하는 명장 중 아서 펜은 '기적을 만드는 사람'(62), '알리스의 식당' (69) 등으로 후보에 올랐고, 로버트 알트만은 '매쉬'(70)와 '내쉬빌'(75) 등으로 후보가 됐지만 상을 받진 못했다. 기자가 속해 있는 LA영화 비평가협회는 2002년의 생애 업적상 수상자로 펜을 선정, 1월에 그의 업적을 기린 바 있다.
/LA미주본사편집위원·LA영화비평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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