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내평생 잊지못할 일]교수댁까지 찾아가신 어머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내평생 잊지못할 일]교수댁까지 찾아가신 어머니

입력
2003.03.17 00:00
0 0

참으로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신 우리 부모님들이 가진 평생의 소원은 대개가 비슷했다. 내가 못 배우고 못 먹고 사니 자식만큼은 잘 가르쳐 사람 구실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소박한 바람, 바로 그것이었다.평생 힘들게 장사하며 생계를 꾸려온 어머니도 그랬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5남매를 애지중지 보살피셨지만 그 중에서도 내게 많은 정성을 쏟으셨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바쁘신 와중에도 한 달도 빼놓지 않고 담임선생님을 찾아 못난 아들을 당부하셨다. 대학입시 때는 하루 종일 장사로 지친 몸을 깨워 100일 내내 북한산으로 새벽기도를 다니셨다. 그 정성이 통해서인지 나는 제법 공부를 했고 서울대학교도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는 계열별로 입학을 했기 때문에 대학 1학년 생활은 고3 수험생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1학년 첫 학기 중간시험부터 사고가 생겼다. 내가 시험시간을 착각해 독일어시험을 아예 못 치른 것이다. 중간시험 빵점은 내가 목표했던 학과를 들어가는 데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시름에 빠진 나는 풀이 죽어 학교도 안가고 방에 틀어박혀 며칠을 지냈다. 어머니는 뭔가 낌새가 이상한 나를 채근하셨고, 자초지종을 듣고 난 당신 역시 낙심천만인 표정이셨다. '자식 놈 하나 판검사 만들어 볼까.' 내심 기대하셨던 모양인데 뜻밖의 복병이 생긴 거였다.

며칠 후 학교수업 중간에 캠퍼스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분이 뭔가를 힘들게 들고 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어! 누구지?' 하는데 점점 다가오는 모습이 바로 당신이셨다. 손에는 나는 맛도 보기 힘들었던 바나나를 가득 담은 바구니가 들려있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어머니는 거침없이 "독일어 교수님을 뵙고 네 놈 재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사정하러 왔다"고 말하셨다. 황당해 하는 내 손을 어디 도망갈세라 꽉 붙잡고 교수님 방을 찾아갔다. 그러나 예상대로 안된다는 답밖에 얻지 못했다. 물론 들고 간 바나나도 거절 당했다. 어머니는 몇 번이나 "어쩌냐, 어쩌냐" 하시며 낙담한 채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날 저녁 집에 갔더니 웬걸, 어머니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내가 집으로 오다가 다시 학교로 갔다. 주소를 물어 교수님 집을 찾아갔지. 부인을 만나 사정사정하니까 자기가 어떻게 해 보겠다고 하더라." 그 덕에 난 며칠 후에 재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물론 난 졸업이후 시험을 쳐 공무원이 되긴 했지만 당신이 그토록 바라시던 판검사는 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고희를 넘기셨지만 지금도 아들놈이 못미더운 모양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차 조심해라"는 말씀을 빼놓지 않는다. 못난 놈을 위해 교수님 댁을 찾아 사정하셨을 당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정 두 언 서울시 정무부시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