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검찰 인사 문제를 둘러싸고 강금실 법무장관과 김각영 검찰총장 사이에 거짓말 논쟁이 벌어졌다. 누구 말이 진실인지 판단할 길이 없는 신문은 이를 어떻게 보도해야 할까? 우선 기사의 제목을 어떻게 뽑느냐 하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다.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누가 거짓말 하나'가 적합할 것 같다고 한다.실제로 한국일보, 중앙일보, 국민일보 등 여러 신문들이 '누가 거짓말 하나'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런데 이를 가장 크게 보도한 동아일보의 기사 제목이 가관이다. "강법무는 거짓말 장관"이다. 김 검찰총장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 제목이다. 기사 내용은 다른 신문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데도 불구하고 동아일보가 기사 제목을 통해 김 검찰총장의 손을 들어준 건 언론 윤리상 타당한가?
이처럼 사건 당사자들 가운데 어느 한쪽의 발언만 인용하여 제목으로 다는 보도 행태를 가리켜 '인용 저널리즘'또는 '따옴표 저널리즘'이라고 한다. 인용을 빙자해 신문의 당파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신문이 당파성을 갖는 건 좋지만 기본적인 언론 윤리까지 외면하면서 그런 식으로 당파성을 드러내야 하는 걸까?
바로 여기에 오늘날 당파성이 강한 일부 언론의 최대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사실과 의견, 기사와 사설의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교묘한 '사실의 의견화'와 '기사의 사설화'가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신문들은 선거 때 사설을 통해서 특정 후보 또는 정당을 지지할 수 있게끔 선거법을 바꾸자는 제안에 대해선 반대하고 있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당파성을 드러내면 독자가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중 플레이는 곤란하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지금 한국 사회는 '언론 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상황에 처해 있다.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은 김대중 정권과 적대적 관계였으며, 노무현 정권과도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을 드러내는 방식일 것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것도 정도 문제다. 그게 너무 심하면 국민성까지 버려놓을 수 있다. 지금 독자들도 언론 윤리를 문제삼지 않고 당파성에 매몰된 시각에서 신문들을 평가하고 있다는 걸 두렵게 생각해야 한다. 최소한의 윤리와 원칙을 지켜가면서 각자의 당파성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인데 왜 이전투구(泥田鬪狗) 방식만을 고집하는가?
이렇게 바꿔보자. 강한 당파성을 갖고 있는 신문들은 그걸 공개적으로 표방하자. 모든 독자들을 다 끌어 안겠다는 무한 팽창 전략을 버리고 '적정 부수' 개념을 도입하자. 중립적인 신문들이 여러 개 있다. 이들이 더 많은 독자들을 갖게끔 하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자.
그런 제안이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이상론이라면, 최소한 사실과 의견은 구분하자. 기사는 오직 사실만을 말하고 주장은 사설과 칼럼을 통해서만 이야기하자. 이게 이행될 수 있게끔 신문협회 차원의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하자. 조중동을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전문가들을 균형되게 포함시켜 가칭 '사실-의견 구분 위원회'를 만들어 이들의 감시 보고서를 매주 모든 신문에 싣도록 하자. 다른 어떤 방법이라도 좋으니 지금과 같은 저급한 수준의 '언론 전쟁'만큼은 바꿔보자.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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