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십시오"라는 인사말이 묵직하게 내리 깔린다. 5월8∼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장이모 감독 연출의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주역급인 티무르 역을 맡은 베이스 양희준(44·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 티무르 역은 북방 타타르의 유배된 왕으로 중국의 투란도트 공주를 사랑하는 칼라프 왕자의 아버지다."어릴 때부터 베이스였습니다. 변성기 때 갑자기 목소리가 낮아졌어요. 성가대에서 노래부를 때도 남들보다 한 옥타브 낮춰 불렀죠. 그래서 별명이 '영감'이었어요." 그러나 낮은 소리는 성악을 전공할 때 축복의 소리가 되었다. 남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낼 수 없는 깊은 저음은 그의 진로를 바꿨다.
"회사생활을 몇 년 하다가 성악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부산대의 이보향 선생님이 첫 스승이었고 서울대로 옮겨 이인영 선생님께 배웠죠." 뒤늦게 시작한 음악이었지만 1987년 중앙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후 90년에 독일로 건너가 쾰른 국립음대에서 쿠르트 몰에게 배워 유럽무대에 데뷔했다. 데뷔작은 92년 뒤셀도르프 오페라단이 공연한 벨리니의 '청교도'였다. 이후 '시몬 양'이라는 이름으로 독일 칼스루에 오페라단 전속 가수로 활약했고 빈의 쉔부른 여름축제 등 여러 무대를 거쳐 95년부터는 함부르크 오페라단에서 주역으로 활동했다. 빈 국립오페라(슈타츠오퍼)에서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차라스트로, 바그너 오페라 '라인의 황금' 중 피졸트 역 등 베이스라면 탐낼 만한 굵직한 역도 맡았다.
"2년 전 독일 슈베린 오페라단의 야외오페라 투란도트에서 같은 역을 했습니다. 그 때도 여러 나라 성악가들과 함께 무대에 섰죠. 그래서 한국인이 혼자라도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게 익숙해요."
그는 "유럽에서 한국인과 함께 공연한 경우는 독일에서 활동 중인 소프라노 권해선(헬렌 권) 정도"라며 "이탈리아, 독일, 한국을 가르기보다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끼리 만나면 좋은 공연이 된다"고 덧붙였다.
강병운, 연광철, 전승현 등 독일에서 활동하는 베이스가 많은 이유에 대해서는 "특별히 잘 가르친다기보다 외국인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주어지는 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학생활이 아니고 독일생활이라는 표현이 맞겠죠. 그 나라 말과 풍습이 노래에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그는 독일로 간 후 1년 동안은 소도시 마부르크에서 노래를 공부하는 대신 독일어를 공부하고 이웃과 어울려 지냈다.
"가수가 노래 부르는 것은 마약과 같다"며 인터뷰 도중에도 노래를 흥얼거렸다. 제일 좋아한다는 베르디의 레퀴엠이 흘러나오자 큰 몸집에서 베이스가 푸근하게 울려 나온다. 지난해 7월 교수 제의를 받고 귀국했지만 지금도 자신은 오페라 가수가 본업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이력서에는 '현재도 유럽에서 활동 중'이라는 문구가 들어있다. 2005년까지 공연 스케줄이 짜여 있는 그는 내년 1월에 함부르크에서 베르디의 '나부코' 중 대제사장 자카리아 역을 맡고 내년 10월에는 빈 국립오페라의 '돈 카를로' 중 종교재판관 역을 맡는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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