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등 지음 휴머니스트 발행·1만3,000원
상상(想像). 코끼리를 본 적이 없는 고대 중국인들이 코끼리 뼈를 보고 그 모습을 그렸다고 해서 이 말이 태어났다고 한다. 휴머니스트에서 펴낸 '상상'은 철학 과학 건축 문학평론 소설 시 만화 방송 경영 생태공동체 등 각 분야에서 일하는 20∼70대 필자 33인의 각양각색의 상상 탐험을 모은 독특한 기획물이다.
33명의 필자들은 각각 기발한 상상을 펼치면서 저마다 상상의 정의를 내렸다.
상상은 밥이다(만화가 고우영), 상상은 짬뽕이다(소설가 김영하), 상상은 완벽한 과학이다(시인 김용택), 상상은 다리이다(생태공동체 연구가 황대권), 상상은 개인의 신화다(국문학자 김열규)…. 상상의 내용도 다채롭다. 말 할 때마다 공중에 말 풍선이 뜨게 만드는 '개인 휴대용 말 풍선 제조기'(소설가 김영하), 꿈을 찍는 사진기(과학자 정재승),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피안의 문 앞에 서 있는 바다 소년(국문학자 김열규), 인간의 상상을 빼앗는 은밀한 프로젝트(월간 'PAPER' 편집장 황경신), 시민이 투자하는 노점상 주식회사(건축가 김진애), 이혼하면 벌금을 물리는 법 제정(언론홍보학자 주철환)….
황당하거나 유쾌하고, 아름답거나 정열적인 이 33편의 상상에서 공통 분모를 뽑는다면 상상의 힘과 기쁨에 대한 믿음 또는 사랑이다. 필자 중 하나인 철학자 김용석은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상상은 천상의 누각을 짓는 일이 아니라, 판자촌을 천상의 누각으로 바꾸는 일이다. 달 위에 동네를 짓는 일이 아니라, 달동네를 달 같이 아름다운 동네로 바꾸는 일이다."
독자들은 이들의 상상에서 감출 수 없는 열망이나 현실 비판,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 미래에 대한 호기심 어린 전망, 영원하거나 궁극적인 것에 대한 향수 등 다양한 숨은 그림을 찾을 수 있다. 33개의 상상 조각을 이어 붙여 알록달록 조각보처럼 만들어 낸 이 책이 선사하는 즐거움이 거기에 있다. 상상은 창조의 요람이자 삶을 움직이는 엔진임을 새삼 확인하는 것은 덤이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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