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봄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한겨울처럼 스산하기만 하다. 북한 핵 문제, 미국의 이라크 공격 임박, 대북 송금 문제, SK의 대규모 분식회계 파문까지 겹쳐 경제가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평범한 시민들이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 가고 있으며, 대구 지하철 참사의 악몽까지 겹쳐 사회 전반적으로 어둡고 뒤숭숭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최근 미국의 고위관리가 우리 나라의 장관에게 북한 영변 핵시설 폭격에 관한 의사를 타진했다고 국내의 한 인터넷 신문이 보도해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보도 내용이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하고 나섰지만, 미국이 북한 핵 시설에 대한 군사공격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며칠 전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제임스 켈리 차관보가 "군사적 선택방안은 아직 테이블 위에서 치워지지 않았다"라고 발언한 것만 보더라도 미국은 북한에 대한 군사 공격 방안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만약 이런 시나리오처럼 미국이 북한의 핵 시설을 선제 공격한다면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한반도 전체가 전쟁의 포화로 뒤덮이고 말 것이다.
이처럼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미국의 군사주의 강경 노선에 대하여 우리 정부는 단호한 반전 평화의 입장을 표명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명분 없는 전쟁이라고 비난하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미국이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라크의 문제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정부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고 파병까지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적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는 나라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입장표명은 한미공조 체제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북핵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원칙을 밝힌 것을 보면, 우리 정부의 미국에 대한 지지입장 표명은 일시적으로 북핵 문제를 덮어두는 데 실효성이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는 이처럼 단기적인 관점에서 한미공조 체제를 강화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강경 군사노선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는 한,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해서도 어떠한 명분을 내세워 공격할 가능성은 항상 남아 있는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만약 이라크전에서 승리한 후 미국이 강경파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북한까지 공격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파병까지 한 우리 정부가 어떻게 국제적으로 반전 평화주의자들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겠는가. 우리 나라 국민의 안전과 생존이 중요하다면 이라크 국민들의 안전과 생존을 위협하는 전쟁에 대하여도 당연히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여야 한다. 세계 각국이 반대하는 명분 없는 전쟁에 우리의 군대를 파병하는 방안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여야 국회의원 35명이 한 목소리로 미국의 이라크침공 반대와 반전평화운동에 대한 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이라크 파병 방침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부는 이러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일관되게 반전 평화의 원칙을 지켜나가며,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 새 정부의 어떠한 개혁조치보다도 시급한 과제는 바로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인 해법찾기이다.
이 유 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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