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변호사가 학생운동 시절 현직 검찰간부의 지시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울산에서 활동하는 최용석(45)변호사는 14일 "1985년 '깃발사건'문제로 서울지검 남부지청에서 조사를 받던 중 담당검사였던 김원치 대검 형사부장이 수사관에게 고문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최 변호사는 "김 검사장이 '깃발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생 황인상(현 변호사)씨의 소재를 추궁했고, 소재를 대지 않자 김모 경사에게 '데려가라'고 지시했다"면서 "이후 남부지청 지하실로 끌려가 물고문과 통닭구이 등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고 밝혔다.
최 변호사는 '김 검사장이 고문을 직접 지시했느냐'는 질문에 "'데려가'라는 말 이후 3시간 고문을 받고 초주검이 된 상태에서 김 검사의 조사를 다시 받았다"면서 "그러나 김 검사장은 나의 고문상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고, 이는 고문을 지시했거나 방조했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검사장은 "검찰에서 고문을 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타락한 검사라도 어떻게 고문을 하라고 지시하느냐"며 "깃발사건을 조사했지만 최 변호사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검사장은 또 "물론 경찰이 연행을 마구잡이로 하고, 그것을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책임은 있을 수 있겠지만, 고문을 지시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최 변호사가 김 검사장의 지시를 받고 고문한 경찰로 지목한 김모(49·경위) 서울 M파출소장은 "당시 남부지청 지하에 조사실이 없었으며, 김 검사장의 지시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최 변호사는 이에 대해 "가혹행위의 공소시효(5년)는 끝났지만, 김 검사장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면 다른 증언자들과 함께 진실을 가리겠다"고 말했다.
김 검사장은 80년대 공안검사로 활약해 당시 학생운동권에서 원성이 높았으나, 검찰 내에선 비교적 원칙에 충실한 검사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노동운동 등을 하다 97년 뒤늦게 사시(39회)에 합격한 최 변호사는 "김 검사가 지금까지 승승장구한줄 몰랐다"며 "반성하고 물러나야 할 사람이 수뇌부에 앉아 강직한 검사로 비쳐지는 모습을 보고 증언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김 검사장은 검찰 내부 인터넷통신망에 '검찰후배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올려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관한 한 나는 철저히 이를 지켰다고 감히 자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 검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대검 형사부장에 유임됐으나 송광수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끝나는 이 달 말쯤 사퇴할 뜻을 비쳐왔다.
/울산=목상균기자sgmok@hk.co.kr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 깃발사건이란
1984년 지하유인물 '깃발'에서 시작,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 사건으로 비화한 서울대 학생운동 조직사건. 민추위 그룹이 이 유인물에서 '노·학 연대'라는 새 방향을 제시하자 학생운동이 노동운동으로 비화할 것을 우려한 5공정권과 공안당국이 수사에 나서 주모자로 문용식(현 나우컴 대표)씨등 10여명을 검거했다. 이후 민청련이 배후조종 세력으로 몰려 김근태 의원 등이 경찰의 고문을 당했다. 서울대생 박종철씨는 이 사건의 마지막 수배자 박종운씨를 하숙집에 재워줬다는 이유로 연행돼 경찰의 물고문 끝에 숨져 87년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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