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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 세노 갓파 "훔쳐보기"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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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 세노 갓파 "훔쳐보기" 시리즈

입력
2003.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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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잡지나 방송 등에 얼굴 내밀 일이 생긴다. 기자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곤혹스러운 질문의 하나는 가장 좋았던, 혹은 최고의 ∼ 에 관한 것이다. 그 많은 기자들은 마치 문제은행의 모범 답안 같은 정답을 요구하는 듯했다. 나는 이들의 질문에 한 번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내 스스로 최고, 혹은 가장 좋았던 것이 "과연 이것"이라고 말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최고의 것보다는 그 틈새에 있는 무엇을 찾아내는 일에 더 큰 흥미를 지니고 있다.체험과 비교의 관점이 풍부해 질수록 간격의 스펙트럼은 촘촘해진다. 모든 것은 등위가 아니라 등급을 매길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최선을 다하며 산다. 그 최선을 이해하게 되면 최고 하나만 골라야 하는 곤혹스러움은 당연하다.

최고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버리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최고를 골라냈던 한 인간을 만난 것은 충격이었다.

어떤 현상에 대한 미시적 접근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나보다 훨씬 먼저 이 작업을 시작했던 일본인 세노 갓파(妹尾河童)가 있다. 그는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무대 미술가이면서 문필가이자, 수집광이며 미식가, 여행광이기도 하다. 그의 이력에서 어찌나 동질감을 느꼈던지….

그가 쓴 많은 책이 있지만 '훔쳐보기' 시리즈가 압권이다. '갓파가 훔쳐본 인도' '갓파가 훔쳐본 명사들의 화장실' 식의 연작들이다. 이들 책은 해박한 지식과 방대한 경험으로 쓰여졌다. 그 가운데 '펜 끝으로 훔쳐본 세상' (서해문집 발행)은 나의 관심과 접근을 훨씬 뛰어넘는 파격을 담고 있어 놀라웠다.

그가 다닌 세계 여러 곳의 풍물과 거기 얽힌 사연은 그의 눈과 손끝을 통해 새롭게 해석된다. 그야말로 종횡무진, 세상의 특이한 일면(그의 심미안으로 포착한)의 탐구는 세심하고도 예리한 호기심으로 이질적 문화에 대한 충실한 이해로 이어진다.

이 책엔 세상의 온갖 잡동사니―주차표, 똥 난로, 성게 요구르트, 스테인리스 김치통, 쥐덫, 인형 등이 등장한다. 도대체 이런 물건에서 인간의 보편적 진실을 이끌어내는 탁월한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자신을 규정하지 않는 전방위 문화 저널리스트의 유쾌한 시선과 문화적 호기심, 여기에 지치지 않는 열정을 더한 결과일 것이다. 다양한 사적 체험의 진실에서 오는 힘은 거창한 구호보다 언제나 세다.

윤 광 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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