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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삶터/종로쪽방 사회복지사 권 수 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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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삶터/종로쪽방 사회복지사 권 수 미 씨

입력
2003.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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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요양원엔 안 가실 거에요?""아프면 여기서 죽는 거지. 시설에 가면 군대식이라 불편해."

"혼자 지내시다 움직이지도 못하면 어떻게 해요."

"권 양이 있으니까 괜찮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쪽방동네. 누우면 빈공간이 없을 만큼 좁은 쪽방에서 2년째 생활하는 인모(71)씨. 요양원 입소의사를 묻는 종로 1∼4가동 사회복지사 권수미(34)씨의 말에 '군대식' 운운하는 걸로 보아 '그래도 쪽방이 편하다'는 속마음을 내비친다. 권씨는 "보건소에서 물리치료라도 자주 받아 건강을 관리하시라"고 당부하며 쪽방을 나선다.

저소득층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최종 사회안전망이고 사회복지사는 이 안전망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이들의 생존권을 좌우하는 권한을 가진 사회복지사는 말벗이나 딸·아들 노릇까지 한다. 거기엔 눈물과 안타까움, 애환이 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쪽방 사람들을 책임지는 권씨가 그중 한명이다.

1m도 안되는 골목길 양쪽으로 한치 틈도 없이 건물들이 붙어있는 종로 쪽방동네. 90채 건물에 한 평 남짓한 쪽방이 650여개 있다. 여기에 생활터전을 잡은 생활보호대상자는 100명정도. 대부분 40∼50대 무직자나 연고 없는 노인들이다.

권씨가 독거노인을 자주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허약한 건강과 열악한 주거환경에 언제 병으로 드러누울지, 혹은 운명을 달리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우유 배달 아줌마를 통해 간접 체크를 하고 혹시 모를 변고에 대비한다.

2000년 11월 평소 말벗을 해주던 쪽방동네 할머니(70)가 갑자기 숨을 거뒀다. 6·25전쟁 때 월남, 노인의 장례를 치러줄 일가친척은 아무도 없었다. 사망신고나 장례절차까지 권 씨가 도맡았다. 화장을 하고 뼛가루를 강물에 뿌리며 허망한 삶을 살다간 할머니를 위해 하염없이 눈물을 뿌렸다. 처음 겪은 상주 노릇이었다.

권씨는 "'죽으면 사회담당이 알아서 정리해줘야 해'라고 부탁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사후 시신기증을 해둔다"며 "이들에겐 죽음보다 죽음이후가 더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자식이 쪽방에 기거하는 부모를 찾아 모시고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부양가족 조사과정에 일가친척조차 "모르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쪽방의 40∼50대에게는 애증이 교차한다. 근로능력이 있는 자활대상자지만 대부분은 매일 술과 더불어 자포자기한 삶을 살아간다. 월생계비는 대부분 술값으로 탕진한다.

생계비가 나간 지 며칠 되지 않아 "만원만 꿔달라"는 이가 있는 가하면 "왜 지원을 더 해주지 않느냐. 그런 서류를 왜 내라 하느냐"며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 '밤 길 조심하라'는 험한 말도 들었다.

권씨는 " '술값 주려고 이 일을 하나'라는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사정을 듣다 보면 안타까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며 "회복불능에 빠지기 전 국가나 친지의 도움을 받았다면 이 정도 나락까지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자활에 성공, 보람을 갖게 하는 일도 있다. 쪽방거주자 김모(42)씨는 택시기사로 취직한 뒤 첫 월급을 받고 백합꽃 한아름을 권씨에게 보냈다. 하지만 이때부터 생계지원은 물론 의료급여도 중단돼 문제가 생겼다. 병명을 알 수 없는 질환을 갖고 있는 김씨는 병원비 때문에 의료급여라도 받을 수 없느냐고 했지만 규정상 그럴 수 없었다. 권씨는 "김 씨의 경우처럼 지원이 끊기면 생활보호대상자 신분 때보다 생활이 더 어려워지는 일도 적지 않다"며 "법적 잣대를 들이댈 때 인간적인 갈등이 심하다"고 말했다.

탑골공원 담벼락에서 햇살을 즐기던 한 할머니는 "권양은 이 동네의 여왕이야, 여왕"이라고 칭찬했다. 이들에게 권씨는 말벗이 될 수 있는 몇 안되는 '정상인'으로 느껴졌다. 권씨는 경기대 사회복지과를 졸업하고 가양동과 신림동 사회복지관에서 5년3개월간 일하다 결핵을 얻어 1년여를 쉰 뒤 2000년2월부터 3년째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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