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전국 법원에 접수된 이혼소송은 무려 4만9,380건. 하루 평균 135쌍의 부부가 이혼소송을 낸 셈인데, 2000년 보다 무려 13.3%나 늘어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추세를 빗대 "6호 이혼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민법 제840조는 재판상 이혼할 수 있는 사유로 '배우자의 부정행위' 등 전통적인 5가지 사유외에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라는 6호 규정을 두고 있는데 최근 이 규정을 이유로 하는 이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인터넷 채팅에 중독돼 가정생활을 소홀히 한 경우, 신용카드 과다사용으로 인한 재산탕진, 이유 없는 성행위 거부, 부당한 피임, 변태 성욕, 지나친 사치, 신앙차이로 인한 반목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판례도 나오고 있다.
법원은 그동안 '가정 파탄의 책임이 있는 자의 이혼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유책주의'를 대원칙으로 삼아왔다. 즉 외도를 한 남편이 부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해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1998년 '파탄 이후 상대가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명백한데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을 때는 예외적으로 (파탄에 책임이 있는 사람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98므15,22판결)고 판결했다. 보수적인 법원이 이른바 '파탄주의'를 조금씩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대법원은 여전히 유책주의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하급심에서 파탄주의를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가정법원은 40세 연하의 여자와 함께 10여년을 살아온 80대 할아버지가 이혼 요구에 불응하는 70대 할머니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에서 남편의 손을 들어줘 '황혼이혼'을 인정했다. "파탄은 아내를 상습 폭행하다 결국 집을 나간 남편의 잘못에서 비롯됐지만 부인 역시 정상적인 혼인 생활을 회복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게 이유였다. 이명숙 변호사는 "별거하며 남남 처럼 사는 부부들이 유책, 무책 따져 가며 호적에 남아있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현실을 법원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한국에서 남자들이 이혼소송에서 이기기는 그리 쉽지 않다"고 말한다. 성격차이로 인한 이혼일 경우 입증이 어렵고 불화가 생기면 집을 나가는 경우는 대부분 남자인데 몇 년간 별거한 뒤 이혼 청구를 하면 오히려 '가정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변호사들은 또 '남편은 절대 부인에게 손대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법정에서 남편들은 흔히 '부부싸움 중 실수로 한 두 대 때릴 수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는 '부당한 대우'의 결정적 증거가 되고 폭행이 인정되면 거의 100% 이혼이 된다고 판사들은 전한다. 반면 법원은 아직 남편에 대한 부인의 폭행을 믿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또 부인들의 경우 "이혼 이야기는 배우자에게 가장 마지막에 꺼내라"고 권한다. 이혼 소송이 들어가면 남편의 재산은닉이 시작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보전조치를 해놓고 이혼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이혼소송은 한번 기각되면 다시 소송을 내도 이기기 어려운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혼 소송에서 기각될 경우 다시 재결합하는 부부는 거의 없고 별거 상태가 유지되기 때문에 첫번째 소송의 결과를 뒤집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태희기자 taeheelee@hk.co.kr
● 이혼소송 전문변호사들
1991년 재산분할제도가 도입되면서 가사사건의 덩치가 커지고 여권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되면서 가사사건 전문 변호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김삼화(사시27회) 변호사는 10여년 전부터 이혼소송에 전문화 개념을 도입했다. 이명숙(사시29회) 변호사는 최근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있다. 여성부 고문 변호사, 대한변협 이사를 맡고 있고, 언론에 여성문제에 대한 의견을 활발하게 발표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출신들의 활약도 눈에 띈다. 90년대초 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박동섭(사시11회) 변호사는 이혼소송 분야의 이론을 정리한 대가다. '실무가사 소송' '주석 가사소송법' 등 '소송 교과서.를 펴냈다. 역시 가정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박희수(사시18회) 변호사는 직접 사건을 챙겨 처리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가정법원 단독판사를 지낸 박영식(사시30회) 변호사는 지난해 개업, 법원 흐름을 읽는 실무능력이 돋보인다.
일반 민·형사 사건과 달리 이혼소송은 변호사가 의뢰인의 '평생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야만 소송에 임할 수 있는 고단한 분야다. 통상 소송기간도 1년 이상이지만 다른 사건에 비해 수임료는 높지 않다. 착수금으로 개인 변호사는 보통 300만∼500만원, 로펌은 1,000만원 이상을 받는다. 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 정도의 A급 변호사는 800만∼1,000만원 정도다. 성공 사례금은 10% 안팎. 보통 수임료는 재산분할 청구와 양육권 지정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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