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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람들]<10>정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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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람들]<10>정찬용

입력
2003.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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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가망신한다니까 돈 싸들고 찾아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요잉∼."정찬용(鄭燦龍·53) 청와대 인사보좌관은 "인사청탁을 받아봤느냐"는 물음에 특유의 농담으로 응수했다. 정부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실세지만 외모나 말투는 영락없는 촌사람이다. 본인도 스스로를 '촌닭'이라 부른다.

지역 시민운동으로 뼈가 굵어 인맥도, 배경도 없는 그가 어떻게 인사보좌관이 됐을까. 본인도 궁금해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물어봤더니 "당신도 나처럼 빚진 사람이 없고, 밥상 차려도 먼저 숟가락 얹지 않는 사람이더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가 쪼까 아부할라고 '대통령은 영민한데 나는 둔하다'고 했더니 '둔한 줄 아니까 뽑았다'고 하더라고. 호남 출신이 혈연·지연도 없는 경상도 땅에서 17년간 살았다는 게 인상이 깊었나봐요잉." 뽑은 사람이나 뽑힌 사람이나 참 어지간하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1년간 복역한 그는 고 전영창 거창고 교장과의 인연으로 3년간 거창고 교사로 일하다 YMCA 총무로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또 광주 민주항쟁의 주역인 윤한봉(尹漢琫)씨의 밀항을 돕다 고초를 치렀다. "당시 윤 선생은 잡히면 바로 사형될 처지여서 82년 상선을 타는 친동생에게 부탁, 캐나다로 밀항시켰다"며 "3년후 그 사실이 들통나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고 회고했다. 노 대통령과는 96년 광주에서 열린 '바보 노무현' 강연에서 처음 만났다. "정말 뜨겁고 고집 센 원칙론자였다"며 "통음을 하다 서로 대취했다"고 첫 만남을 기억했다.

청와대에 입성한 뒤로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섞은 토속적 브리핑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네요잉∼", "아따 목마른디 여그는 물도 한잔 안주네이" 등으로 이미 '청와대 스타'가 됐다. 그는 "거창에 살면서도 계속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며 "처음엔 거부감을 표시하더니 나중엔 왜 사투리 안쓰냐고 뭐라 카더라"고 넉살을 떨었다. "와 카노", "밥 문나" 등 능숙한 경상도 사투리를 선보일 때는 유명 개그맨도 비켜갈 정도였다.

새 정부의 인사기준을 묻자 그는 "탕탕평평, 적재적소"로 요약했다. 진대제(陳大濟) 정통부 장관의 인사파문에 대해서는 "도덕, 개혁성이 아닌 전략적 인사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나중에 따로 발표하려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 "정치인도 아니고 선거에 나설 생각도 없다"고 수차 강조했다. "정치야 딴 사람이 하면 되지만 돈 없이 고생만 하는 시민운동에는 내 30년의 노하우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시민운동에 각별한 애착을 표시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사진 이종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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