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추억이지만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 시절 대한민국의 많은 가장들은 일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자존심을 버렸다. 잘 나가던 자동차회사의 부장은 대리점 영업사원직을 마다하지 않았고, 갑작스레 정년을 맞이한 교장선생님은 기간제 교사가 되어 교무실 한 켠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입시와 결혼을 앞둔 자녀들을 앞에 놓고 가장의 자존심이란 지극히 사치스러운 것이기도 했다.'좌천'과 '강등'의 수모 속에도 일자리를 지킨 사람들은 한결 나은 편이었다. 작업복에 구두를 신은 엉성한 차림으로 새벽 인력시장에 나선 불운의 가장들을 바라보는 자녀들의 심정은 오죽했으랴. 그들이 자존심보다 소중하게 생각한 것은 생계의 절박함과 노동의 경건함이었다. 그들의 퇴직 앞에 붙은 '명예'라는 수식어를 함부로 훼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쾌한 뉴스지만 검찰 지휘부 인사 이후 기존 검사장급 간부들이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고 일자리를 버리고 있다. 훈계조로 일관한 사임변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며 그들의 표정에는 여느 때보다 불편한 심기가 묻어 나온다. 서열과 위계를 중시하는 조직에서 늘 반복되던 관행이라지만 그들의 퇴임에는 절박함은 없고 불평과 오만이 가득하다. 범사회적으로 팽배한 개혁의 요구에 온몸으로 맞서 낡은 관행을 답습하는 그들의 '자존심'은 도무지 굽힘이 없다.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인사권과 수사권에 얽힌 복잡다단한 사태의 배경은 차치하기로 하자. 남은 명함을 찢어버리며 눈시울을 적시던 우리의 아버지들을 기억하는 젊은 세대가 '자존심' 강한 검찰 간부들에 바라는 것은 직업과 노동의 경건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최근 온라인에 떠도는 '검사스럽다'라는 신조어는 '먹고 살 걱정이 없음에 오만 방자함'을 뜻하는 표현이라 한다. '변호사로 개업해 잃어버린 명예를 금전으로 상쇄할 걱정없는 사람들'이라는 세간의 말이 천박한 비아냥거림만으로 들리지도 않는다.
주위에 아직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거리를 배회하는 청년 실업자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그들의 퇴임을 '용퇴'라 표현하는 각종 언론이 불만스러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전에 평검사들이 모여 국가수반에게 날카롭게 지적하지 않았던가. '듣기 거북한 표현'은 쓰지 말자.
최 홍 Weekly Hanyang 편집장한양대 사회학 석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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